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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스 컨벤션 센터의 라운지. 몸에 딱 달라붙는 골프 셔츠를 입은 인간들이 라운지 테이블에 앉아 맥주병과 술잔을 비웠다. 개중에는 아랍어가 쓰인 말보로를 자랑처럼 피우는 자들도 있었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디서 일하다 왔냐고 묻는 아마추어들도 있었다. 미국보안산업전시회 회장에서 아마추어와 프로를 구분할 수 있는 자들은 전투에 단련된 프로와 잔뼈가 굵은 무기 제조업체 판매원 정도였다. 붉게 타들어가는 담배 불빛이 용병 일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독립 청부인들의 모습을 비추었다. ASIS는 보안 장비와 카메라를 선보이는 따분한 전시회처럼 보였지만, 청부인들의 사교장이자 보안 서비스 제공자를 위한 전시장이기도 했다. 민간보안회사들은 이곳에서 바쁘게 돌아다니며 멋진 부스와 멋진 전시품으로 잠재 고객을 끌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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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그는 흐린 고통 속에서 꿈을 꿨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내리는 곳에서 사냥감을 동굴로 끌고 들어가는 짐승에 대한 꿈. 짐승은 가끔 밤중에 산기슭까지 내려와 멀리서 마을 불빛을 보기도 했다. 땔감을 주우러 온 어린 인간들과 마주쳤을 때는 그들이 소리를 지르기 전에 먼저 도망을 쳤다. 그리고 아주 먼 곳에서 그들이 나뭇가지를 한아름 주워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짐승이 언젠가 다시 내려갔을 때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눈사태 때문인 것 같았다. 적막하고 황폐하고 신조차 없는 땅. 짐승은 낮과 밤을 알았으나 날짜 세는 법을 몰랐다. 제 목을 노릴 어떤 날짐승도 없는 땅에서 아주 오랫동안 혼자였다. 짐승은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있다 동굴로 돌아가 차갑게 언 사슴 내장에 이빨을 박아 넣고 뜯어 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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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스는 광야를 내려다보았다. 해가 지고 있었다. 오랫동안 바람에 깎여나가 앙상하게 드러난 돌기둥과 끝없는 모래들판. 구름이 넓고 얇게 퍼져 금색으로 물이 들었다. 척박한 곳에서도 살 수 있는 검은 새 몇 마리가 멀리서 날아올랐다. 트리스는 어둠이 완전히 내려오기 전에 길을 찾으려 했다. 죽은 다육 식물들 사이로 뻗어 있는 토막 난 듯 한 길. 무엇이든 색깔이 있는 것을 찾았다. 무엇이든 움직이는 것. 무엇이든 희미하게나마 갈 방향을 알려줄 어떤 것. 검붉은 동공이 지는 해를 따라 움직였다. 메그는 멀리 서 있는 몸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며 천천히 다가갔다. 하루 종일 같은 길을 빙빙 돈 다리가 불평을 했다. 메그는 깨어 있는 시간이 늘었다. 가장 늦게 잠들고 가장 먼저 일어나 잠든 얼굴을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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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스는 낯선 냄새를 맡으며 눈을 떴다. 나뭇잎을 태우는 것 보다 조금 더 독한 냄새. 막사의 녹색 천장을 흐린 눈으로 보다 그 냄새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트리스가 몸을 옆으로 돌리자 메그가 한쪽 무릎위에 팔을 얹고 구겨진 담뱃갑을 쥔 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손끝에는 말라붙은 핏자국이 남아 있었고 갈색 필터를 문 입술은 찢어진 채였다. 메그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갈색 속눈썹 위로 먼지가 앉을 때조차도. 입술만 벌려졌다가 다물리고를 반복했다. 저 얇은 입술 아래에 차게 식은 피가 천천히 흐르고 있을 것이다. 테이블 위에서 굴러다니는 알약들이 심장을 붙잡고 있을 것이었다. 사과가 안쪽부터 문드러지듯 조용하게 파국으로 행하는 몸뚱이가 호흡을 반복하자 담배 연기가 위로 흩어졌다가 소리 없이 사라졌다. 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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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그는 부드러운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잠을 자다 느지막이 일어났다. 어두운 색의 나무 천장에서 햇빛이 자취를 감출 때쯤이었다. 메그는 몸을 돌려 침대 한쪽에 걸터앉아 몇 장의 종이를 넘겨보고 있는 트리스의 등을 보았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짐승의 등에 업혀 얼어붙은 땅을 가로질렀던 새벽을 생각했다. 매달릴 곳이라고는 새하얀 털과 그 목덜미 뿐이었던 새벽. 일출조차 구분 할 수 없었던 흐린 하늘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었는데, 그 모든 것이 익숙하다는 듯 한참을 달려 안전한 땅에 내려준 짐승에 대해서. 헤이. 메그가 작게 부르자 트리스는 협탁 위의 사탕을 쥐어 메그 머리 옆에 내려놓았다. 메그는 사탕의 껍질을 벗기며 한 번 더 불렀다. 야, 트리스. 트리스는 고개를 돌리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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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이 닿는 곳마다 눈이 쌓였다. 죽음의 수의처럼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이. 침엽수 가지가 버티지 못해 꺾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옆 봉우리에서 눈사태 같은 파도들이 위로 솟구쳤다가 연약한 숲을 먹어치우듯 멀리 쓸려내려갔다. 천둥같은 거대한 소리가 멈춘 후에는 귀가 아플 만큼 새하얀 적막이 이어졌다. 눈구름에 가려져 희미했던 해가 그마저도 천천히 산마루 아래로 사라지자 혹독한 바람이 호흡까지 얼려버릴 것처럼 불기 시작했다. 트리스는 그 모든, 익숙한 것들을 한참동안 바라보다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언젠가는 주인이 있었을 것 같은 동굴 안에서 작은 모닥불이 천천히 타고 있었다. 나뭇가지에 아무렇게나 꿰인 얇은 사슴고기 냄새와 섞여 아주 흐린 짐승 냄새가 났다. 트리스는 핏기가 가신 사슴고기의 냄새를 맡..
아르마니야와 마이산 국경 어디쯤. 귀청을 때리는 소리와 함께 휴이 헬리콥터 두 대가 언덕 꼭대기에서 선회했다. 어떤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은 이 중포 기지는 특수작전부대와 용병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지키고 있었다. 장전이 된 무기들은 국경을 향해 있었고, 차량들은 언제든지 떠날 수 있도록 준비된 채였다. 주변에 있는 몇몇 언덕 꼭대기에도 헤스코를 쌓아 만든 전초 기지들이 보였다. 헤스코 방벽 위는 묵직한 모래주머니들과 은색으로 빛나는 둥근 가시철조망이 어지럽게 뭉쳐 있었다. 은색 철조망이 해의 움직임에 따라 살벌하게 빛났다. 트리스는 헬리콥터 착륙장에 서서 선회하던 헬리콥터가 천천히 착륙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터빈의 배기가스 냄새가 코끝을 스치는 중에도 내내 무표정했다. 검은 티셔츠와 카키색 바..
메그는 사람 죽이는 일을 책 한권 읽듯 했다. 가끔은 살인이 재미없는 책을 읽는 것보다 쉬웠다. 그게 그녀가 하는 일이고, 그녀가 했던 일이고, 그녀가 가장 잘 하는 일이다. 멕시코 최악의 카르텔이 수 년 동안 수천달러를 주며 그녀에게 시킨 일이었다. 그녀가 죽음과 살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주목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표적과 표적 아닌 자의 차이를 분명히 하고 싶어서다. 그녀는 눈에 띄는 것을 싫어했고 되도록이면 적게 일하고 많이 벌고 싶어 했으며 가능하다면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오고 싶지 않은 게으른 사람이었다. 메그는 오후 세 시 쯤에 눈을 떴다. 엎드린 채 자다 몸을 반쯤 일으킨 그녀는 베개 밑의 권총을 확인하고 몸을 뒤집어 천장을 보았다. 다시 눈을 감았다. 아침에 천장이 날아가 있어도 이상하..
12명의 블랙워터 경호팀은 바그다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요르단에서 오는 새로운 교대근무자들을 인솔하기 위해서였다. 비행기가 하루에 두 번 밖에 들어오지 않는 바그다드 공항은 버려진 세트장처럼 조용하고 으스스했다. 알람시계 대신 총소리로 기상하는 사람들에게도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하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더 조용했다. 잠시 후 통과해야 하는 아일랜드 도로에 지난 이틀 동안 열 여섯번이나 공격이 떨어졌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블랙워터 이지스 팀은 이 길을 거의 날마다 달렸다. 정부 반군이 퍼붓는 총알과 급조폭발물을 피해 전속력으로. 그들은 어두운 주차장에 앉아 다른 경호팀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열두 명 중 몇몇은 마르케스 반체 마르케스나 다인코프 같은 다른 보안업체의 험담을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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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는 승리 외의 목적이 없었다. 쥐와 벌레가 들끓는 콜로세움의 최하층에서 태어났으나 운이 좋게도 살아남았고 운이 좋게도 살인에 재능이 있었던 인간. 다른 선택지가 없었지만 그녀는 그 외길이 즐거웠다. 좁아터진 방에서 등을 맞대고 잠들고 별 것 아닌 음식을 나눠먹었던 사람들을 모두 죽였을 때도, 형제들의 고통에 찬 신음보다 관중들의 환호성이 좋았다. 그들에게 약한 자의 죽음은 당연한 것이었으며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자는 가장 강한 인간 뿐이었으므로. 최후의 승리자가 되어 콜로세움에서 나갈 수 있게 되었을 때 알렉스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유명한 존재였으므로 도시에서 가장 큰 폭력조직에 들어갈 수 있었다. 곧 그녀는 적의 의지와 목을 함께 꺾어버리는 행동반의 탑시드가 되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