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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C: 블랙워터

블랙워터. 01

Eugene_FMF 2018. 9. 10. 01:11

 

 12명의 블랙워터 경호팀은 바그다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요르단에서 오는 새로운 교대근무자들을 인솔하기 위해서였다. 비행기가 하루에 두 번 밖에 들어오지 않는 바그다드 공항은 버려진 세트장처럼 조용하고 으스스했다. 

 알람시계 대신 총소리로 기상하는 사람들에게도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하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더 조용했다. 잠시 후 통과해야 하는 아일랜드 도로에 지난 이틀 동안 열 여섯번이나 공격이 떨어졌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블랙워터 이지스 팀은 이 길을 거의 날마다 달렸다. 정부 반군이 퍼붓는 총알과 급조폭발물을 피해 전속력으로. 

 그들은 어두운 주차장에 앉아 다른 경호팀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열두 명 중 몇몇은 마르케스 반체 마르케스나 다인코프 같은 다른 보안업체의 험담을 늘어놓기도 했다. 저긴 계약 조건이 말이 안 돼. 그래서 애송이들만 넘쳐나지. 저것들도 오래 못 살걸. 애사심보다는 동족혐오에 가까운 말들이 몇 번 오고가자 팀 리더가 손을 내저으며 제지했다. 그들은 그제야 열심히 놀리던 입을 멈추었다. 

 짙고 짧은 군청색 머리칼의 리더는 검은 셔츠와 검은 마스크, 검은 고글을 쓰고 있었다. 방탄 조끼와 케볼라 헬멧 위에는 푸른색 다이아몬드가 그려져 있었고, 반장갑을 낀 손은 커다란 물병도 가볍게 쥐고 있었다. 고글 아래의 눈동자는 검붉은 색으로, 이곳에서 누구보다 고요하고 차분해 보였다. 

 리더는 전직 네이비 씰. 구성원은 뉴질랜드 특수부대, 미시시피 전직 해군, 피노체트 군인, 로스엔젤레스 빈민가 담당 경찰 출신. 하루에도 몇 번씩 생사를 오가는 일을 하는 자들은 이전에도 평범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신입이 면세점에서 캔디바와 콜라를 한아름 사와 그들에게 하나씩 건네었다. 리더는 작은 캔디바를 말없이 받아 포장을 뜯으며 기계 기술자가 경호 차량 3대를 점검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마침내 비행기가 도착했다. 바퀴 달린 트렁크를 끌고 나오는 잘 차려 입은 이라크인들과 얼마 안 되는 서양인들이 비행기에서 내렸다. 이라크인은 이라크인이 모는 택시를 잡았고, 서양인들은 전문경호팀의 영접을 받으며 무면허 BMW에 올라탔다. 이지스 팀은 새로 온 동료 청부인에게 지급할 헬멧과 방탄복, 실탄이 가득 든 탄창, M4 소총을 펼쳐놓았다. 그리고 신입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주먹을 마주친 후 곧바로 리더의 짧고 신속한 설명을 들으며 능숙하게 무기를 찼다. 무기를 장전하고 거총 자세까지 취하면 달릴 준비는 끝난 것이었다.  

 이지스 팀은 차에 올라타 잠시 기다렸다. 아일랜드 도로를 주시하던 반군들이 미국인들의 차량을 공격할 것이 뻔했으므로 그들은 다른 경호 업체가 먼저 달려나가 방패막이가 되어주길 바랬다. 그들은 다른 차량들의 출발 소식을 무전기로 전해들은 후 공항 터미널에서 빠져나와 남쪽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2시 30분 경. 여기까지는 안전한 곳이다. 그러나 마지막 공항 검문소를 빠져나가면 곧바로 빨간불이었다. 빨간불이란? 무기가 불을 뿜는 위험지대를 뜻했다.

 2시 35분. 그들은 공항 출구를 지키는 경비들에게 손을 흔들고 비교적 안전한 공항을 떠났다. 출구의 게시판에는 ALL WEAPONS RED 라고 쓰여 있었다. 무기를 착용하고 안전장치를 풀라는 뜻이었다. 방금까지는 시시한 이야기를 나누며 웃기도 했으나 이제는 농담을 하는 사람도 없었다. 리더가 무전기에 대고 외쳤다. 모두 각자 위치! 다음 순간, 황소들이 우리에서 뛰쳐나가듯 세 대의 경호차량이 열린 문으로 쏜살같이 빠져나왔다. 

 길 양쪽으로 새까맣게 탄 대추야자 나무들이 죽 펼쳐져 있었다. 앞서 터진 폭탄에 희생된 것들이었다. 앞으로 나란히 뻗은 지선 도로는 몹시 붐볐고 도로 옆의 황무지에는 검게 그을린 BMW 차체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들은 무전기에 대고 명령과 응답을 반복했다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주요 도로가 뻥 뚫렸다. 경보 해제. 

 2시 37분. 첫 번째 다리에 접근했다. 리더는 무전기를 들고 한마디씩 끊어 전달했다. 오늘 아침 브리핑을 명심하라. 다리 밑에 폭발물이 있을지 모르니 주의하라. 낮고 명확한 목소리는 지직거리는 잡음 속에서도 또렷하게 들렸다. 무전을 전달 받은 자들은 이라크인이 수류탄을 던지지는 않는지 느닷없이 저격수가 나타나지는 않는지 살폈다. 이상 무! 이어 첫 번째로 길이 합쳐지는 곳에서 차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폭탄 차량이 밀리는 차들 사이로 들어와 자폭하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뒤로 물러서! 리더가 아랍어로 소리쳤다. 가까이 붙은 차 한대가 그녀의 말을 무시했다. 회전 포탑 위에서 대기하던 사격수가 총알로 도로에 지퍼 자국을 내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운전자와 그 가족이 공포에 질려 쳐다보았지만 그들은 무시하고 지나쳤다. 매캐한 화약 냄새가 코를 스쳤다. 경호차량이 또다시 고가도로로 들어서자 회전 포탑에 있는 사격수들이 일제히 기관총을 들어 올려 사방을 경계했다. 이상 무!

 차들이 속도를 늦추고 있다! 다리를 통과해! 리더의 명에 따라 총들이 일제히 밖으로 쑥 올라와 뒤에 있는 차량들을 겨누었다. 위장한 테러리스트나 날아오는 폭발물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이것이 과한 경계가 아님은 이 곳에서 하루만 살아도 알 수 있었다.

 240분. 차가 빠르게 다가온다. 승객을 점검하라. 다가오는…택시에 네 사람. 리더의 목소리가 무전기 너머에서 지직거렸. 부하 한 명이 거울을 이용해 차량 뒤쪽을 확인했지만 총을 보고 화들짝 놀란 평범한 택시였다. 그들은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로 광장을 통과해 킬 존으로 들어섰다. 언젠가 본 정보 분석 차트는 초록색, 주황색, 빨간색 도표로 화려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길에서 죽었다는 것을 뜻했다.

 키가 작고 지저분한 나무들이 시야를 가로막는 사이 총알이 탕, 하고 머리 위로 스치듯 지나갔다. 하지만 저격수는 보이지 않았다. 이지스 팀은 온통 주의를 집중한 채 고속도로에서 빠져나가는 길로 서둘러 접어들었다. 이 길을 달려 12번 게이트를 통과하면 거기서부터는 비교적 안전한 그린존이었다. 그때 펑, 하는 육중한 소리가 나더니 뒤에서 균일한 압력이 밀려왔다. 검은 연기가 버섯처럼 피어올라 값싼 수입차를 탄 이라크인이 사망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불과 5분 또는 6분 차이로 시체의 신세를 면했으나 감상에 빠져있지 않고 계속 전방에 주의를 집중했다.

 그린존으로 통하는 12번 게이트가 바로 앞에 보였다. 그러나 바짝 붙은 차 한대가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리고 또 한대가 그들을 향해 돌진했다. 발사 준비. 누군지 확인해! 리더가 고함을 질렀다. 시커먼 총열이 차체를 향하자 당황한 운전사가 핸들을 꺾고 붐비는 차량 대열 사이로 끼어들어 물러났다. 교통 체증을 피하려는 택시인 듯했다. 그들은 총을 쏘지 않았지만 거두지도 않았다. 

 2시 42분. 도로 좌우로 평화로운 주거 지역이 보이기 시작했다. 운이 좋게도 단 한명도 죽지 않고 단 한명도 죽이지 않은 채 고가도로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회색 콘크리트 바리케이드에서 어슬렁거리던 해병대원이 그들에게 통과하라고 손짓했다. 경호차량이 드디어 멈추었다. 리더를 제외한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무기의 안전장치를 잠그었다. 손목시계를 보니 2시 43분이었다. 그린존에 들어왔다는 것.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8분 동안의 질주를 마쳤다는 것. 리더는 총알에 긁힌 차량 앞유리를 보았으나 별 일 아니었다. 그들은 내일도 이 일을 해야 할 것이다. 새 날이 오면 새 임무가 주어지니까. 

 

 팀 이지스의 리더는 검은 군화로 바쁘게 공항을 가로질렀다. 임무 복장에서 방탄조끼와 헬멧만 벗은 채로 20시간 동안 비행기를 탔던 그녀는 내리자마자 입국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았다. 옆에서 빠른 걸음으로 뒤따라오며 끝없이 말을 거는 부하가 중동의 파리처럼 시끄러웠다.

 트리스 대장, 뭐가 그렇게 바쁘십니까? 저녁이나 같이 드실래요?

 시간 없어.

 오늘은 굳이 본부에 안 가도 되잖아요?

 좋아하는 여자가 불러.

 오.

 부하의 등 이두박근에는 블랙워터 로고가 커다랗게 새겨져 있었다. 곰 발바닥과 야간 저격용 적외선 조준기 로고. 그들의 덩치와 문신을 본 사람들은 그들 근처에서 다섯 발자국은 물러났다. 덕분에 수월하게 입국 수속을 마쳤지만 그 시선이 달갑지는 않았다.

 너 위에 뭐라도 입지.

 왜요, 너무 멋져요?

 눈에 띄잖아, 자식아….

 눈에 띄는 건 대장님이신데.

 부하가 으쓱거리며 눈을 굴렸다. 사실 그 말이 맞았다. 큰 키와 다부진 체격의 그녀는 여행과 비즈니스로 공항을 들린 사람들 사이에서 단연 튀었다. 끈이 꽉 조여진 검은 군화와 검은 자켓. 짧은 군청색 머리칼과 붉은 눈동자. 짙은 눈썹과 또렷한 눈매. 아주 잘생긴 얼굴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도 못했지만 뒷모습에서 시선을 거두지도 못했다. 그녀가 혀를 찼다.

 근데, 별로 기뻐 보이진 않으시네요.

 어디서 그런 말 해봐. 죽어.

 말 안합니다.

 …두 시간 안에 오라고 했거든.

 댁이 어디신데요?

 맥린 지하철역 근처.

 가깝잖습니까!

 근데 선물을 못 샀어.

 예?

 공항에서 먹었던 캔디바 있지. 그걸 그 녀석이 엄청 좋아해. 이번에 사오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정신이 없어서….

 …타이슨에서 뭐라도 좀 사가면요?

 걔가 거길 몇 번이나 들락거린 줄 알아? 매대 위치까지 외웠을 거라고!

 트리스가 한 손으로 앞머리를 쥐어뜯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대장의 패닉을 처음 본 부하는 멀뚱히 서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어떤 명령도 냉정한 얼굴로 수행하던 사람이 이렇게까지 초조해하다니. 트리스가 구겨진 미간을 손가락으로 꽉 누르자 부하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웃지 마라.

 아, 너무 웃겨서요. 어떤 사람이길래 그렇게까지 걱정하십니까? 

 어떤 사람이긴……. 너도 알걸. 

 제가요? 

 그래. 클로버 팀 대장. 

 트리스는 발걸음을 계속 옮겼다. 커다란 두 사람이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 출국터미널의 새하얀 바닥을 가로질렀다. 옷 몇 벌만이 들어있는 캐리어가 바닥에서 가볍게 튀었다. 트리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부하는 멍청한 얼굴로 예? 하고 되물었다. 

 메그 몰라?

 그 탑티어 저격팀 대장이요? 땋은 머리에, 키는 요만한? 부하가 손을 가슴께보다 아래에서 흔들며 물었다. 

 그렇게 작진 않은데. 트리스가 대답했다. 

 내가. 뭐?

 그들이 9번 게이트를 통과해 밖으로 나오자 그들 앞에 서 있던 누군가가 툭 누군가가 대답했다. 검은 코트를 입은 키 작은 여자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회색 폴라티에 검은 비니를 눌러 쓰고 땋은 머리를 한쪽 어깨로 늘어트린 여자였다. 그녀의 입에 물려 있는 사탕 막대가 위아래로 톡톡 움직였다. 

 허억.

 …메그? 어떻게,

 메그라 이름 불린 여자가 성큼 다가와 트리스의 자켓 깃을 쥐고 당겼다. 당황한 트리스는 그 무겁지 않은 힘에 습관처럼 딸려내려가다 입술에 살짝 튼 입술에 닿아 우뚝 멈추었다. 사탕 냄새가 났고 딸기처럼 단 것. 작은 혀가 낼름거리는 것을 느끼다 이로 입술이 깨물려, 트리스는 더 생각하지 않고 메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까치발을 든 몸이 휘청거려 두 팔에 더욱 힘을 주면서. 달콤한 숨이 뜨거웠다. 

 한참동안 매달리듯이 입맞춤을 받던 메그가 트리스의 발등을 꾹 밟았다. 트리스는 그때서야 메그를 놓아주었다. 메그는 손등으로 입술을 닦아내고 그녀를 삐딱하게 올려다봤다. 옆에서 눈치를 보던 부하는 이미 자리를 뜨고 없었다. 어떻게 왔냐고? 메그가 말했다. 항공권 검색했지. 에린이 알려줬거든. 

 게이트 위치는 어떻게 알았어.

 너 회사가 전세 낸 곳에만 주차하잖아.

 그렇긴 한데데리러 온 거야?

 어. 물어볼 것도 있고. 

 뭘? 하고 되묻기 전에 메그가 어깨를 툭툭 치고 뒤돌았다. 바로 앞에 주차장을 낀 공항도로가 보였다. 멀리 차들이 바쁘게 왕복했다. 승객을 태운 검은 택시가 등을 끄고 출발했다. 공사 중인 실내주차장 앞에서 인부들이 작업을 철수했고, 가로등이 하나 둘 켜졌다. 해가 천천히 지고 있었다. 트리스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공항에서 멀다고 사택을 거절하고 시내 한 가운데의 싸구려 아파트에서 지내는 메그가, 이틀에 한 번 아파트 아래의 편의점으로 내려가는 것 외에는 현관을 나서지 않는 그녀가 나를 위해 공항까지 왔다니. 단순히 기뻐하기에는 메그는 그다지 애정 넘치는 연인이 아니었다. 

 저녁은 어떻게 할래?

 네가 자주 가는 곳 있지. 해리슨타운 근처 카페. 메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분홍빛으로 천천히 물드는 하늘과 반짝거리는 가로등 사이에서 아주 드물게 웃었다. 가늘게 휘어지는 새파란 눈과 팔랑거리는 갈색 속눈썹. 어깨 위에서 가볍게 튀어오르는 땋은 머리칼과 곡선을 그리는 입술. 그 웃음은 지나치게 예뻤지만 트리스는 마주 웃어주는 대신 그녀의 말을 곱씹었다. 그리고 메그가 말한 카페를 떠올린 순간, 표정을 굳혔다. 

 거길 가야겠어.

 그리고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우리는 용병이 아닌 군사 청부인입니다. 용병이란 돈을 받고 한 나라의 수장을 끌어내리는 놈들이지만 우리는 국가 수장과 외교관을 지키는 자들입니다. 한낱 용병들이 NGO, 다이아몬드 광산, 군사 기지, 해적의 표적이 된 항로를 무사히 보호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안전하게 퇴각할 수 있을 때까지만 반격하며 명령받은 것을 수행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자는 사이 당신의 목숨을 백 번 넘게 구할 것입니다. 우리는 계약서에 서명한 이상 절대로 혼자 도망치지 않을 것입니다. 잘 훈련받은 1천 7백 명의 사설 군대와 자체 공군력을 보유한 민간보안사업체 블랙워터. 그들은 그렇게 말했다.

 이지스 팀은 이라크에서 미군정 최고행정관과 정부의 재건 프로젝트를 보호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리고 심심찮게 사망자가 낙오자가 발생하는 대형 임무에서 최저 이탈율을 기록하며 프로젝트를 마쳤다. 민간 청부인이 되기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쉽게 된 자들은 쉽게 그만두었고 그만두지 않은 자들은 쉽게 죽었다. 이는 전쟁터에서 제정신을 유지하며 오래 일한 이들이 얼마 없음을 뜻하기도 했고, 현장의 주축이 될 베테랑들이 현저히 부족하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이에 회사에서는 팀원 전원에게 추가 수당을 지급하고 팀 리더에게 특별한 코드네임을 내리며 좋은 처우를 약속했다. 계약서에 찍힌 금액이 엄무의 위험도와 본인의 실력을 뜻한다는 우스갯소리를 곱씹어볼 때 그들은 놓치고 싶지 않은 인재들이었다. 그렇다면 가장 많은 성과급을 받은 그들의 리더는 어떤 사람일까? 많은 것을 설명하지는 못하겠지만, 지금 버지니아 레스톤의 카페에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 속에서 네 살 어린 여자친구의 열렬한 눈빛을 받으면서. 

 음메그, 설명 좀…. 

 입이 있다고 말은 하네.

 제가 설명해줄까요? 

 곱슬머리 염색 금발을 높게 묶은 웨이트리스가 에피타이저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끼어들었다. 익숙한 얼굴이었고, 언젠가 사적으로 몇 번 만났던 여자였고, 이 카페의 매니저이자 이 거리의 모든 소문을 꿰고 있는 여자였다. 쿵. 트리스는 그녀를 보고 부정하고 싶었던 것을 확신했다. 트리스의 얼굴이 사색이 되자 그녀는 빨간 매니큐어를 바른 손을 입가에 가져다대며 즐거운 듯 웃었다.

 오랜만이에요. 오늘은 좀 거친 옷차림이네.

 트리스는 반가운 인사에 굳은 얼굴을 겨우 움직여 멋쩍게 웃었다. 임무를 끝내자마자 대충 씻고 공항으로 달려간 탓에 검은 자켓과 군화 차림 그대로였다. 에피타이저로 나온 얇은 빵에 잼을 발라먹으려던 메그가 트리스의 손목 옆에 버터나이프를 내려찍었다.

 웃어?

 아니….

 트리스는 테이블에 꽂혀 덜덜 떨리는 버터나이프를 차마 쳐다보지 못하고 식은땀을 흘렸다. 버터나이프라 분명 날이 뭉툭할 텐데. 나무 테이블 위에 막 꽂을 수 있는게 아닌데. 그들을 지켜보던 웨이트리스가 웃음을 터트리며 새 나이프를 가져다주었다. 그게 말이죠. 트리스. 어떻게 된 거냐면. 웨이트리스는 메그 옆자리에 털썩 앉아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이 분이, 메그가 저희 카페에 들렀는데요. 예전에 당신이 보여준 사진이랑 너무 닮아서 그만 말을 걸었거든요. 트리스 아냐고. 실례인 줄은 알지만 궁금하잖아요? 당신이 좋아한다던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겠죠? 그래서 말을 텄는데! 글쎄. 그 때 하필 시프트였던 당신 팬이 그 말을 듣고 싸움을 걸었다가, 이 이야긴 줄일게요. 아무튼 그래서.

 …그래서?

 당신이 한 번씩 꼬셨던 여자 이야기를 다 해버렸어요!

 세상에 맙소사.

 활짝 웃는 웨이트리스와 반대로 트리스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이 카페 이름을 듣는 순간 알았어야 했는데. 죽어도 다른 곳에 가자고 했어야 했는데. 몰래 전화라도 해서 돈은 얼마든지 줄테니 셔터 내리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턱을 괴고 가만히 듣고 있던 메그가 시선을 바닥으로 돌리며 씩 웃었다. 심장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메그, 들어봐. 다 옛날 이야기야.

 우리가 언제 처음 봤었지?

 일 년전에?

 가장 최근에 네가 집적댔단 여자가 8개월 전이더라. 그때 내가 아르만에 있었고.

 …, 음. 잠시만. 

 트리스는 입을 다물고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8개월 전. 아르만이었나. 이라크였나. 메그와 연인 사이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관계에 진전이 있었던 때였고, 그녀와 같은 임무를 맡았다가 부상 때문에 돌아왔던 때였다. 아무리 내가 여자를 좋아해도 그때 누굴 건드리진 않았을 텐데. 치료와 재활 만으로도 벅찼고 메그를 생각하기에도 바빴으니까. 트리스는 숨을 참고 몇 개월 전 일을 더듬어보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숨을 삼켰다.

 헉.

 기억이 나셨어?

 아침 조깅 중에 자주 마주친 사람과 몇 번. 커피를 마시긴 했었다.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랬다는 것만은 기억이 난다. 트리스는 큰 손으로 두 눈을 가렸다. 절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운동 이야기를 한 게 전부라고 맹세할 수 있었지만 메그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건 잠깐 멀어진 그 사이 다른 여자와 커피를 마셨다는 사실과 웨이트리스가 증언한 화려한 전적 뿐. 쏟아지던 총알 사이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손이 잘게 떨렸다. 

 당신도 이렇게 당황하는 일이 있네요. 웨이트리스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 테이블을 가볍게 쳤다. 당신 같은 여자는 누구도 못 가질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러고 보니 처음 키스했을 때가 생각나네. 진짜 잘했는데.

 아가씨제발.

 우리 직원 절반 이상은 거기 넘어갔을걸요? 사장님도 좋아했어요. 손님 많이 온다고. 

 너라도 죽어, 말 좀….

 메그 사람 죽여요?

 필요하면.

 메그가 코트 안의 자동권총을 만지작거리며 웨이트리스를 보았다. 웨이트리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메그의 가슴팍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거 진짜?

 응.

 이 사람이랑 같은 일 하나요?

 지금은

 그럼 전에는?

 카르텔 청부인.

 와우.

 작게 중얼거린 웨이트리스가 메그에게 찰싹 달라붙어 높은 목소리로 말했. 언니, 궁금한거 더 있어요? 저는 언니 편이에요! 저런 얼굴만 잘난 바람둥이는 그걸로 쏴버려요!

 그거 좋네.

 메그가 쿡쿡 웃었다가 서늘한 눈으로 트리스를 보았다. 트리스가 숨을 잠깐 멈췄다.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트리스는 웨이트리스의 입에서 더 많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기만을 빌어야 했다. 웨이트리스는 그런 트리스를 보다 즐거운 듯 손을 들어 맥주 세 잔을 주문했다. 그리고 제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온갖 이야기를 해주었다. 검은 탱크탑과 트레이닝복을 걸치고 이른 아침마다 샌드위치를 포장해갔다는 이야기. 매번 팁을 엄청 줘서 졸부인 줄 알았다는 이야기. 여기저기 나 있는 흉터가 아주 섹시했다는 이야기. 트리스 때문에 아침 시프트를 두고 웨이트리스 사이에서 싸움이 일어났다는 이야기 등. 메그는 턱을 괸 채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는 트리스를 바라보며 맥주를 마셨다. 웨이트리스의 말이 길어질수록 트리스의 고개가 점점 더 내려갔다. 웨이트리스가 장황한 이야기를 마쳤을 때 트리스는 거의 이마를 테이블에 박고 있었고, 웨이트리스는 그런 트리스의 정수리를 보며 맥주잔을 입에 댄 채 깔깔 웃었다. 

 아, 재밌었어요. 난 트리스 전 여자친구 모임이라도 열려고 했는데, 언니가 무서워서 안 되겠네.

 열어봐. 재밌겠다.

 저희 다 죽는 거 아니구요?

 일단 너는 안 죽었잖아.

 농담도!

 메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트리스의 지갑을 가져와 그녀에게 백 달러를 팁으로 주며 쪽지를 건넸다. 웨이트리스는 쪽지를 앞주머니에 넣으며 뭐에요? 하고 물었다.

 내 번호. 이 새끼가 또 수작질 하면 찔러.

 칼로요?

 찌른 다음엔 911 부르지 말고.

 저 앞에 러닝용품점 아르바이트생도 이 사람 좋아한대요. 

 제발!

 넌 닥쳐.

 팁을 두둑히 받은 웨이트리스는 즐거운 얼굴로 손을 흔들며 테이블에서 멀어졌다. 고개를 슬쩍 든 트리스는 메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다 메그의 손을 조심히 쥐었다. 메그. 메그는 크고 검은 손이 닿아오는 것을 피하지 않고 의자에 몸을 깊게 기댔다. 왜? 순순히 대답했지만 높낮이가 없는 목소리. 무슨 말을 해도 자비는 없다고 알리는 것 같은 음색이었다. 

 옛날 일이라고 봐달라는 거 아냐. 그냥. 나는….

 이제 내가 제일 좋다고?

 응, 그래, 그래서.

 트리스. 나는 말이지.

 메그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코트 안쪽을 보여주었다. 검은 코트 한쪽에는 자동권총 탄창 여덟 개가 빽빽이 매달려 있었다. 누군가가 신고한다면 소지만으로도 구속될 무장. 트리스는 조용히 숨을 삼켰다. 이 사람은 내가 군인의 직함을 달고 있을 때 카르텔의 청부인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내가 누군가를 죽이고도 명예를 얻었을 때 이름 세 글자에 백만이 넘는 현상금이 걸린 사람이다. 나의 여자는 평생토록 범법자로 살았는데. 내가 지금 누구의 심기를 건드린 거지? 

 마음만 먹으면 이 카페의 모든 인간을 죽일 수 있어. 메그가 말했다. 물론 너도 그렇겠지. 차이점은 넌 안 그럴 거고 나는 그러고 싶다는 거려나.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카페 음악에 묻힐 것 같았지만 트리스는 그 말을 똑똑히 들었다. 이게 그냥 질투라고 생각해? 그럼 너는 날 한참 잘못 알고 있는 거야. 난 네가 과거에 만났던 인간들이 어떤 얼굴에 어떤 몸을 가졌는지는 관심 없어. 내가 죽일 수 있느냐 없느냐에만 관심이 있지. 그러니까.

 메그는 천천히 손을 뻗어, 꽉 쥐여진 주먹 위에 길고 깊은 손톱자국을 내었다. 

 이제 이딴 일로 날 자극하지 마.

 그 상처. 그 소유의 표시. 트리스는 상처를 내려다보았다. 총알보다는 한참 얕은 상처였지만 명백한 독점의 표시였다. 평범한 연인들처럼 달콤한 말 한번 속삭인 적 없는 사이. 하지만 트리스는 메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아픔에 익숙한 몸뚱이가 그 작은 상처를 무시하려 했지만 트리스는 아픔을 기억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녀가, 메그가 쾌감에 취한 채 제 등을 끌어안고 이 따가운 상처를 퍼트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트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메그의 손을 조심스레 들어올리고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그렇게 할게. 메그. 다시 한 번만 나를 믿어줘. 트리스가 말했다. 메그는 새파란 눈동자로 트리스의 내리감긴 눈꺼풀을 바라보다 검은 자켓의 깃을 쥐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가지런한 이로 피를 내며 속삭였다. 그래. 다음은 없어. 트리스는 그 말을 마음 깊이 새기며 메그의 작은 혀를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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