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그는 몇 시간이 지났는지 생각하며 에린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살갗이 뺨에 스치는 것이 좋았다. 홀로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을 때는 손닿지 않았던 것. 메그는 거품에 씻겨내려가고 남은 체취를 맡으며 다시금 무겁고 나른하게 정신을 가라앉히다 몸을 벌떡 일으켰다. 침대가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다. 푸른 눈이 얇은 칼날처럼 어둠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빛이 들어올 틈이라고는 없었다. 어떤 부정한 것도 깃들지 못할 정갈한 실내. 사랑하는 것만이 가득한 곳에 쇠의 비린 냄새가 희미하게 섞여있었다. 메그가 등을 꼿꼿이 세우고 숨을 고르자 인기척을 느낀 알렉스가 메그를 뒤에서 끌어안아 눕히고 뺨을 부볐다. 왜 그래? 메그가 대답했다. 피 냄새가 나서. 알렉스는 메그의 작은 목소리에 눈을 떴다가 에린과 ..
이 세상은 산산이 찢어져 안정을 잃어야 한다. 잿더미 속에서 그들이 몸을 일으킬 때까지. 어두웠다. 칠흑이었다. 시간조차 흐르지 않는 듯 했다. 그 어둠을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어떤 것도 움직이지 않고 그저 일말의 가능성만 있는 세계. 그렇게 진정 영원이 지난 후 태초의 빛에서 신들이 태어났으니 그들은 스스로를 타이탄이라 칭하였다. 수백의 타이탄들은 질서도 법도도 없는 땅에서 서로를 죽고 죽이다, 숨 끊어진 자의 피거품에서 작디작은 생명체가 몸을 일으켰을 때 전쟁을 그만두었다. 신들은 그 하찮은 존재에 대한 긴 상의 끝에 빛을 신의 영역이라 결정 내렸고 그 초라한 생명은 어둠 속으로 쫓겨나 태양을 모르는 것처럼 아주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 중 그 결함 가득한 비이성적 존재를 누구보..
이 대륙에 새로운 질서가 세워진 지 수십 년이 지났다. 나는 이 책을 씀으로써 세 가지 각별한 기쁨을 느낀다. 첫째, 군인들이 전쟁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한 지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내 귀와 눈에 닿았던 위대한 사고와 지성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인류가 저지른 실수의 반복을 막고 바람직한 방향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타이탄 코이우스가 말하길, 인류는 프로메테우스 통치 하의 천 년보다 백 년 간의 전쟁을 통해 더 방대한 발전을 이루어냈다. 화약 발명으로 인한 군수공학의 성장과 확산이 시초였다. 프로메테우스의 타계 후 타이탄들은 빈 왕좌에 앉기 위해 저마다 군사를 모았고 코이우스의 군대는 조잡한 창과 가죽 갑옷 대신 쇠칼과 권총을 쥐었다. 초기의 권총은 손잡이에 짧은 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