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그는 흐린 고통 속에서 꿈을 꿨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내리는 곳에서 사냥감을 동굴로 끌고 들어가는 짐승에 대한 꿈. 짐승은 가끔 밤중에 산기슭까지 내려와 멀리서 마을 불빛을 보기도 했다. 땔감을 주우러 온 어린 인간들과 마주쳤을 때는 그들이 소리를 지르기 전에 먼저 도망을 쳤다. 그리고 아주 먼 곳에서 그들이 나뭇가지를 한아름 주워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짐승이 언젠가 다시 내려갔을 때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눈사태 때문인 것 같았다. 적막하고 황폐하고 신조차 없는 땅. 짐승은 낮과 밤을 알았으나 날짜 세는 법을 몰랐다. 제 목을 노릴 어떤 날짐승도 없는 땅에서 아주 오랫동안 혼자였다. 짐승은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있다 동굴로 돌아가 차갑게 언 사슴 내장에 이빨을 박아 넣고 뜯어 먹..
트리스는 광야를 내려다보았다. 해가 지고 있었다. 오랫동안 바람에 깎여나가 앙상하게 드러난 돌기둥과 끝없는 모래들판. 구름이 넓고 얇게 퍼져 금색으로 물이 들었다. 척박한 곳에서도 살 수 있는 검은 새 몇 마리가 멀리서 날아올랐다. 트리스는 어둠이 완전히 내려오기 전에 길을 찾으려 했다. 죽은 다육 식물들 사이로 뻗어 있는 토막 난 듯 한 길. 무엇이든 색깔이 있는 것을 찾았다. 무엇이든 움직이는 것. 무엇이든 희미하게나마 갈 방향을 알려줄 어떤 것. 검붉은 동공이 지는 해를 따라 움직였다. 메그는 멀리 서 있는 몸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며 천천히 다가갔다. 하루 종일 같은 길을 빙빙 돈 다리가 불평을 했다. 메그는 깨어 있는 시간이 늘었다. 가장 늦게 잠들고 가장 먼저 일어나 잠든 얼굴을 내려..
메그는 부드러운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잠을 자다 느지막이 일어났다. 어두운 색의 나무 천장에서 햇빛이 자취를 감출 때쯤이었다. 메그는 몸을 돌려 침대 한쪽에 걸터앉아 몇 장의 종이를 넘겨보고 있는 트리스의 등을 보았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짐승의 등에 업혀 얼어붙은 땅을 가로질렀던 새벽을 생각했다. 매달릴 곳이라고는 새하얀 털과 그 목덜미 뿐이었던 새벽. 일출조차 구분 할 수 없었던 흐린 하늘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었는데, 그 모든 것이 익숙하다는 듯 한참을 달려 안전한 땅에 내려준 짐승에 대해서. 헤이. 메그가 작게 부르자 트리스는 협탁 위의 사탕을 쥐어 메그 머리 옆에 내려놓았다. 메그는 사탕의 껍질을 벗기며 한 번 더 불렀다. 야, 트리스. 트리스는 고개를 돌리지도 ..
시선이 닿는 곳마다 눈이 쌓였다. 죽음의 수의처럼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이. 침엽수 가지가 버티지 못해 꺾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옆 봉우리에서 눈사태 같은 파도들이 위로 솟구쳤다가 연약한 숲을 먹어치우듯 멀리 쓸려내려갔다. 천둥같은 거대한 소리가 멈춘 후에는 귀가 아플 만큼 새하얀 적막이 이어졌다. 눈구름에 가려져 희미했던 해가 그마저도 천천히 산마루 아래로 사라지자 혹독한 바람이 호흡까지 얼려버릴 것처럼 불기 시작했다. 트리스는 그 모든, 익숙한 것들을 한참동안 바라보다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언젠가는 주인이 있었을 것 같은 동굴 안에서 작은 모닥불이 천천히 타고 있었다. 나뭇가지에 아무렇게나 꿰인 얇은 사슴고기 냄새와 섞여 아주 흐린 짐승 냄새가 났다. 트리스는 핏기가 가신 사슴고기의 냄새를 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