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신이 죽었다. 전쟁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신앙보다 권력을 중요시한 자들과 신을 잃은 광신도들이 성전을 재현했다. 멋대로 국경을 긋고 비무장 상태의 일가족을 몰살시킨 자들. 인류가 인류를 이끌 것이라는 선언을 입맛대로 해석한 인간들. 힘없는 자들은 헛간의 쥐처럼 불안 속에서 살았고 따각대는 말발굽 소리만 들려도 집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폭력의 주체가 인간으로 변한 것 외에 무엇이 바뀌었는가? 우리는 버석하게 마른 땅과 날카로운 피안개를 헤치며 계속해서 싸웠다. 약한 자들의 세상은 아직도 도래하지 않았다. 이가 부러지고 허벅지에서 피가 뚝뚝 흐르는 날이 끝없이 이어졌다. 핏덩이. 매캐한 화약 냄새. 입안에서 굴러다니는 모래 알갱이. 특별히 고되지는 않는 고통과 고난들. 가끔은 이유 없이 불안하기..
마지막 설화/여명
2019. 7. 21. 02:41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