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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신화/Erinyes

Erinyes. 02

Eugene_FMF 2018. 8. 12. 23:50

 

 트리스는 꼬박 이틀을 감금당한 후 합동참모본부 의장과 대면할 수 있었다. 그들이 던져준 옷으로 갈아입고 수갑을 찬 후 방탄유리를 통해서였다. 그녀는 열 두 개의 총구 앞에 앉아 의장을 바라보았다. 벽면 양쪽의 스피커를 통하지 않고서는 입을 열 자격조차 없었으나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답할 준비가 되어 있었을 뿐이었다. 

 목적은? 

 북방군의 정보를 넘겨주지. 

 목숨을 구걸하러 온 거냐? 

 그녀가 헛웃음을 쳤다. 살고 싶었으면 여기에 왔겠어? 나는 모든 것을 걸었다. 말 한 마디 못하고 죽을지도 모르는 적진까지 맨손으로 걸어 들어왔다고. 그러니까 내 이야기를 들어보기라도 하려고 온 거 아니겠어.

 배신의 변명이 길구나. 쉽게 배신하는 놈은 쉽게 죽는다.  

 나는 충성했던 적이 없어. 목적이 같았을 뿐이지.  

 얼굴은 늙은 여우, 몸은 단단한 산양 같은 참모의장이 눈썹을 꿈틀대며 턱을 괴었다. 아주 오랫동안 무리의 우두머리로 군림해 왔을 것 같은 남자였다. 그는 고개를 까딱여 담배를 받아들이고 방탄유리로 막힌 그녀의 얼굴에 연기를 천천히 뱉었다. 희뿌연 연기가 흩어진 후 짐승 가죽 같은 눈꺼풀이 느리게 깜빡이다 미동 없는 그녀의 표정을 마주했다. 

 그 목적이 뭔지 잘 대답해야 할 거다. 우리는 아군이든 적이든 배신자를 살려두지 않거든.

 전쟁을 멈추는 것. 그녀가 말했다. 

 그래서 정보를 팔러 왔다고? 

 팔아?

 그녀는 눈을 한번 감았다 떴다. 그녀는 포로의 옷을 입고 있었고 콘크리트 벽은 두꺼웠으며 철창으로 막힌 창문에서 쇠 같은 추위가 단단하게 죄여 들어오고 있었으나 그 뿐. 그녀는 우습기만 했다. 잘 들어. 난 바라는 게 없어. 그저 너희들이 힘들게 가려는 길을 편하게, 조금이라도 덜 죽게 만들어 주겠다는 거지.

 …아무래도 정신이 나간 것 같은데.  

 의장의 말을 끝으로 등 뒤의 총구에서 안전장치를 푸는 소리가 차례대로 났다. 하지만 이딴 것이 두렵지는 않았다. 그녀에게는, 온 감각이 마비되듯 싸늘해지는 분노가 더 두려운 것이었다. 그녀는 수갑이 채워진 손으로 이마를 덮은 군청색 머리카락을 쓸어올리고 뒷머리를 손끝으로 긁었다. 화를 가라앉히려는 듯. 

 나는 북방군대 특수편성부 1소대의 트리스 소위. 해발 만 사천 피트의 설산에서 태어나 쿠거와 엘크를 사냥하며 살아남았다. 내가 사랑하던 마을과 유일한 상관은 군인들 손에 토막났고, 그 여자의 마지막 말은 명령에 불복종하라는 거였지. 여기까지 백만 걸음을 걸으면서 생각했어. 그게 무슨 뜻인지. 하지만 아직 모르겠다. 이런 내가 전쟁을 증오할 이유가 부족해? 아직 부족하다고!? 

 그르렁대는 목소리로 시작해 포효에 가깝게 소리치자 스피커가 웅웅거렸다. 모든 것이 싸늘하게 가라앉았고 누군가는 숨조차 쉬지 못했다. 말이 없던 참모의장은 사냥감을 탐색하듯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트리스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했다. 흔들림 없는 시선과 곧은 자세, 눈가의 주름과 어깨의 견장이 남자가 지나온 세월을 보여주는 듯 했다. 그렇다면 너도 내게서 볼 수 있겠지. 남의 위에 서는 자라면 내가 어떻게 살아남았고 어떤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는지 알 수 있을 테다. 짧지만 긴 시간이 지나자 담뱃불 끝에서 재가 후드득 떨어졌다. 

 …전쟁을 멈추기 위한 전쟁을 하겠다……극단적이군. 허무맹랑해. 

 할 수 있는 걸 할 뿐이야. 

 너와 우리 중앙군의 이념이 다르다면? 

 트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목을 반대쪽으로 당겼다. 수갑을 잇던 사슬이 허무하게 끊어졌다. 자유로워진 손으로 반대쪽 수갑의 이음매를 눌러 부수자 차갑고 날카로운 소리가 바닥에 흩어졌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여태껏 가만히 있었던 이유는 대화하고자 했기 때문이며 마음만 먹으면 지금이라도 모두를 죽일 수 있다는 것처럼. 그 짐승의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쏠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어떻게든 너희 우두머리를 왕으로 만들고 이 짓거리를 끝내겠어. 

 참모의장은 헛웃음을 치다 아주 오랫동안 웃었다. 그가 한쪽 손을 들자 총구와 강화유리가 거두어졌다. 누군가가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의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고 좋다고, 하지만 조건이 있다고 말했다. 군의 정점에 선 자의 목소리는 특별한 울림을 가지고 있었으나 처음 만난 산호랑이처럼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이 자가 자신의 목을 노려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트리스는 남자의 손을 단단히 맞잡고 대답했다. 뭐든지 하겠다고.

 

 트리스는 북방군의 최종 공세가 시작되기 전 일주일 동안 의장 옆에서 회의에 참석했다. 고위 장교들은 새로운 개를 들이신 거냐고, 물리지 않게 조심하시라고 웃었으나 그 순간만큼은 누구의 개라도 될 수 있었다. 

 공세는 7일 후. 세 대대가 이 산에서부터 공격을 개시할 겁니다. 어떤 장비를 가지고 있던지 간에 평지에서의 싸움과 다릅니다. 기초체력이 좋은 보병중대를 맡겨주십시오. 북방군의 견장을 가지고 돌아올 테니까. 

 어떤 설산이라 해도 승리할 수 있다. 자네는 중앙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군. 중기관총으로 무장한 우리 기갑부대가 아무 것도 못 할 거라 생각하나?  

 이 전장이 그저 눈 약간 덮인 뒷산 같으십니까? 그런 화력을 퍼부어댔다간 눈사태로 다 죽습니다. 기갑부대는 일회용인가 보군요.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뭘 믿고 널 보내지? 가장 우수한 병사들을 데리고 그 쪽으로 귀환할 생각 아닌가? 

 귀하의 군대는 그 정도인가 봅니다. 중앙군의 가장 우수한 보병들이 저 하나를 못 죽이고 포로가 되다니.  

 뭐라. 

 의심하셔도 됩니다. 당연한 거니까. 절 못 믿겠으면 부관을 함께 보내 언제든 목을 내리치십시오. 피하지 않고 맞아주겠습니다. 하지만 잘 들어, 내가 죽을 곳은 이 땅이 아니야. 나를 죽이려면 나의 산에서. 내 시체는 내가 물어뜯은 짐승들의 새끼에게 줘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어?

 장교들은 참모의장의 뜻을 따르기로 했으며 트리스는 가장 우수한 보병중대로 임시 발령을 받았다. 그녀는 새벽 세 시에 중대를 집합시켜 설산에 대비할 물품이 얼마나 구비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웃었다. 이것 봐, 겨울을 모르는 너희들의 연약한 군대로는 북방군을 깎아먹을 순 있어도 잡아먹을 순 없었을 거다. 트리스는 그 자리에서 겨울 방벽용 가죽화와 거기에 달 아이젠을 이백 오십 개 요구했다. 이 중대의 장비에 북방군 토벌의 절반이 걸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의장 각하. 

 

 4일 후. 트리스의 중대는 북방군의 전포대가 완전한 태세를 갖추기 전 야습과 게릴라전을 반복하여 적의 사기를 꺾어놓았다. 눈사태의 위협이 있는 곳을 피해 자리를 잡기란 쉽지 않았으므로 아무리 우수한 포병대라 해도 속수무책이었다. 다음은 타 지역의 방어를 담당하던 북방군 제 3소대가 지원을 왔다가 중앙군의 규모를 예측하지 못하고 괴멸, 최소한의 인원만을 남겼던 지역은 기습으로 참패를 당했다. 참모의장은 어디까지가 계획이었던 거냐고 물었고 트리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라고 대답했다. 그 다음은 쉬웠다. 

 

 2주 후. 참모의장 직속 특무부대가 군단장을 사살하고 돌아왔다.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과 자신의 상관을 모함한 주범이 죽었다는 사실 사이에서 혼란스러웠으나 전파 탈취와 암호 해독으로 두세 번 확인한 내용이었다. 

 네가 죽이게 놔둘 걸 그랬군. 

 누굴 복수에 미친개로 알아? 

 그런 줄 알았다만. 

 내가 나서면 작전이 노출되었다는 걸 알게 될 거 아냐. 그게 아니라도 이 방법이 먹히는 건 세 번 까지다. 북방군 사령관 놈들도 아주 멍청이는 아니니까. 앞으로의 전투는 이겨도 이긴 게 아닐 거야. 내가 훈련시킨 병사들이거든. 

 그래서. 무슨 계획이라도 있나? 

 이 세 소대와의 전투는 내게 맡겨줬으면 하는데. 

 

 트리스는 무릎까지 오는 눈을 밟으며 방패를 들고 전장의 맨 앞줄로 나섰다. 먼 숲에서 승리의 뜻인 회색 연기가 피어올라 회색 하늘로 퍼졌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깐 따뜻했을 계절에 녹은 눈이 그대로 나뭇가지에 얼어 있었으며 군인들의 발자국은 이 산에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할 것. 세상이 날 것 같았다. 트리스의 은빛 방패와 군청색 머리칼만이 색을 가지고 반짝거렸다. 

 적군 백 명의 가장 뒤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트리스가 훈련시킨 군인들 중 하나였다. 동상에 걸려 울던 햇병아리가 어느 새 중위 견장을 달고 있었는데, 그녀는 그게 낯설기도 새롭기도 했다. 하지만 지위가 바뀌어도 본질은 바뀌지 않는 법. 현명하고 충성스러운 인간은 동족을 알아볼 줄 알았다. 트리스가 적진 한 가운데에서 소리를 지르자 총을 교본대로 파지하고 있을 뿐인 군인들 사이로 옛 부하가 걸어 나와 그녀에게 북방식 경례를 했다. 

 기다렸습니다. 소대장님. 

 그 여자가 죽은 북방군에 더 이상 나의 상관은 없다. 

 예. 이제 당신께서 저의 유일한 상관이십니다. 

 

 옛 부하들 중 살아남은 자들은 그들의 소대를 이끌고 모두 투항했다. 그들은 포로가 되었으나 형식상이었다. 트리스보다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던 그들에 의해 3개월 후 북방군과의 전투는 대부분 종식되었다. 남은 자들이 최후방을 기점으로 게릴라전을 펼치며 끝까지 저항하고 있으나 곧 끝날 것이었다. 참모의장은 트리스에게 보병사단 직할 방패중대를 맡기고 소령에 임명했다. 그녀는 임명식에서 감사를 표하며 견장을 받아들였지만 달갑지는 않았다. 하지만 참모의장은 중앙군의 세력 확장을 위험하다 판단한 남방군이 끼어들어 어쩔 수 없다고, 남방군만 꺾으면 전쟁이 끝날 거라 했다. 그리고 앞서 말했던 조건을 지킬 때라고 말하며 트리스를 처음 보는 곳으로 데려갔다. 

 

 그녀는 먹거나 자는 것에 대한 욕구가 없었다. 먹을 수 있으면 먹고 잘 수 있으면 자는 것. 추운 땅. 설산. 피가 눈처럼 내리는 전쟁터. 그 곳이 어디이든지 안온한 삶은 있지도 않았고 그것이, 무엇이든지 하겠다고 약속했던 이유였다. 하지만 이건 아니야. 묶인 채 눈앞에 들이밀어진 인체 강도 실험의 청사진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이 아니었다. 

 이게 조건이었나. 이게 조건이었냐고. 인간을 이 이상 강하게 만들어서 무슨 의미가 있는데! 그녀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를 질렀다. 발악 같기도 했고 고함 같기도 했다. 인간은. 인간이어야 한다. 그 목의 무게가 모두 똑같아야 한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 인공적인 신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녀는 손등의 핏줄이 터질 만큼 발버둥 쳤으나 온 몸을 휘감은 쇠사슬은 시끄럽게 흔들리기만 했다. 참모의장이 그녀를 비웃듯 고개를 저었다.

 인간? 아니지. 너는 극소수의 선택받은 자야. 평범한 인간 따위가 아니란 말이다. 만약 네가, 이 실험에서 살아나갈 수 있다면 더 높은 자리를 주지.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위치를 보장하겠다. 그러니 나를 증오하든 뭐든 마음대로 해라. 하지만 결국 넌 내게 고마워하게 될 거야. 

 

 트리스는 꼬박 2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성대가 말을 듣지 않을 때 까지 소리를 질렀다. 차라리 마음껏 발버둥 칠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핏줄을 도화선으로 불을 붙인 듯, 맨몸으로 눈밭에 처박아진 듯, 온 피부가 성한 곳 없이 짐승의 손톱에 할퀴어진 듯, 지리멸렬한 고통에 내장이 꼬이고 이제는 더 아플 곳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때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녀가 피범벅인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을 때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트리스는 전체가 유리로 된 오른쪽 벽면을 보고, 자신의 눈이 죽은 자의 핏빛 같은 색임을 알 수 있었다. 

 

 날 죽일 테냐? 

 그만두겠어. 

 트리스는 움푹 파인 눈으로 참모의장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고개를 떨궜다. 귀 안쪽이 울리고 피비린내가 코 안을 찔렀다. 온 근육이 찢기는 줄 알았는데 손가락과 다리는 떨림 하나 없는 것이 이상했다. 모든 신체검사를 받고 돌아온 트리스에게 새 방패가 내려졌다. 이지스. 트리스는 거미줄과 뱀 무늬가 양각으로 감싼 방패를 내려다보며 제 이름의 기원을 생각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전장은 어디지? 

 참모의장이 벽에 기댄 채 웃으며 그녀에게 지도를 내밀었다. 신의 활약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남방군은 따뜻한 곳을 기점으로 한 부유한 군대였다. 막강한 자본과 체격 좋은 군인들을 기반으로 힘을 확장한 군대. 신은 좋은 포병대가 있는 편이라는 말을 증명하듯 몸집을 불릴 대로 불린 채였다. 이게 정말 마지막 전쟁이겠지. 누가 왕이 되든 남방군과의 전투로 정해질 것이다.

 트리스는 최전선에서 싸웠고 그녀에 대한 소문은 날마다 커졌다. 실험 받고 중대장 된 거라며. 북방군을 배신한 놈이라더라. 군에는 선한 인간이 있을 수 없다. 그런 인간들은 벌써 죽었다. 또한 그들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그러나 굴복시키는 것 또한 쉬웠다. 이기고 구하고 싸우면 되니까. 눈앞에서 대포를 막아내고 적을 방패로 내려찍으며 누구라도 죽이고 누구라도 구해내면 되는 것이었다. 그녀의 흰 망토를 눈앞에서 본 자들은 모두 그녀의 편이 되었다. 그러지 않으면 죽을 터였다. 

 트리스는 고작 소령이었으나 명령을 받지 않고 단독으로 움직였다. 참모의장의 명이었다. 승리만을 취하는 자신을 믿는 것인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2개 중대를 끌고 온 남방군과 48시간이 넘도록 교전하며 병사들이 한 둘씩 죽어나가자 더 이상의 단독 행동은 무리라고 판단, 처음으로 지원을 요구했다. 참모의장은 가장 우수한 보병을 그리 보내주겠다며 2시간만 버텨 보라 했다. 

 2시간? 장난해? 본부에서 이 곳까지는 2시간 만에 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장갑차를 끌고 온다면 더더욱. 하지만 남진을 위한 중요한 능선에서 후퇴할 수는 없었고 버림패 취급을 당했다 해도 후퇴하는 길에 더 많은 병사들이 죽을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아군의 앞을 막아서며 목표지점인 교차로까지 힘겹게 걸음을 떼었다. 죽을 것 같은 놈들은 내 뒤로 와라! 한 발이라도 더 맞추기 위한 방패로 나를 써라! 그녀의 방패중대가 총알을 몇 만 발 받아내었는지는 모르지만 깨진 방패를 끌어안고 쓰러지는 자들은 셀 수 있었다. 총알이 귀 옆을 스쳤다. 죽어가는 자의 신음이 생생했다. 입안에서 피맛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 트리스는 엄청난 함성과 함께 무언가가 자신의 앞으로 떨어져 거대한 먼지바람을 일으키는 것을 보았다. 왔어요! 투견이 왔다고요!! 모두가,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으나 트리스는 그럴 수 없었다. 햇빛 아래에서 빛나는 금발을 하나로 꽉 묶은 여자가, 피투성이의 모습으로 웃으며 망치를 들어 올리는 것이 적군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위험해 보였으므로.

 

 트리스는 전투가 끝난 후 방금 보았던 장면을 생각하며 막사의 침대에 앉아 있었다. 그건 전쟁이 아니었다. 학살이었지. 그 여자는 웃고 있었다. 후퇴하는 적군의 뒷덜미를 낚아채어 죽인 후에는 붉은 눈동자가 검을 정도로 가라앉았고, 몇 번 깜빡인 후에는 다시 웃었다. 트리스는 모든 인간을 야생동물에 빗대어 먹이사슬의 위치로 분류했으나 그 여자는 여태껏 봐왔던 종류가 아니었다. 네발 달린 짐승보다도 위험한 존재. 피로 흠뻑 젖은 군복 곳곳에 살점을 묻히고서 망설임 없이 이를 드러내는 괴물. 군에는 선한 인간이 있을 수 없다고 했지만 그렇게 웃을 수 있는 인간이 있어서도 안 되었다. 트리스는 그녀가 자신과 동류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들어가도 돼? 

 …소속을 밝혀라. 

 나 아까 지원 온 부대 대장. 

 그러니까 소속을…됐어. 

 트리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막사의 문을 걷어내자 금발의 군인이 방긋 웃었다. 고마워. 보직이랑 계급 대는 게 익숙하질 않아서. 

 …아까는 고마웠어. 

 난 알렉스. 너는? 

 트리스. 

 알렉스라 이름 밝힌 그녀는 트리스의 손을 맞잡고 흔들었다. 한쪽 눈은 검은 안대에 가려져 있었으나 반대 쪽 눈은 자신과 완전히 똑같은 색이었다. 타인의 비명 속에서 드러나는 흰 송곳니와 붉은 눈. 붉은 망치. 행복으로 터져나오는 웃음소리. 몇 십 년 동안 길러온 야생의 감이 이 인간은 위험하다 외치고 있었다. 알렉스는 빈 의자에 털썩 앉아 제 막사인 양 트리스에게 자리를 권했다.  

 앞으로 우리 같이 다니게 된대. 들었어? 

 뭐? 처음 듣는데. 

 두 중대 더 올 거야. 그 중에 한 명은 에린! 내 친구고. 

 좀 더 자세히 말해봐.

 에린은 엔지니어고 직급은 기억 안 나. 물론 싸움도 잘 해. 다른 한 명은 저격수라는데 잘 모르겠어. 

 ……너 강화군인이지? 그 에린이란 사람은? 

 난 맞아. 에린은…일단 강해. 

 얼마나 강한데. 

 싸워 본 적은 없어. 다치게 하고 싶진 않거든. 

 트리스가 피곤한 듯 눈 밑을 꾹꾹 눌렀다. 엔지니어가 강화군인일 리는 없고 저격수의 정체는 불투명했으나 그 여우같은 의장의 결정인 것은 분명했다. 뭘 생각하든 네 마음대로는 안 돼. 트리스는 이를 아득거리다 막사를 둘러보고 있는 알렉스를 보았다.

 알렉스. 뭐 하나만 물어보자. 

 그래! 

 네가 웃고 있는 걸 봤어. 전장에서. 왜 웃었어? 

 싸우는 게 좋아서?

 살인이 즐거워?

 딱히 생각해본 적 없는데. 

 네가 죽인 사람들은.  

 약한 놈들은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다고? 

 그런 거잖아. 

 알렉스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넌 안 웃더라. 그렇게 강하면 신날 텐데. 신나지 않아?

 강한 건…수단이지. 그래서 우리가 전쟁의 수단으로 이런, 이런 눈이 된 거고…….

 그래? 넌 선택한 게 아니야? 

 아니야. 

 알렉스는 손가락 위에 입술을 올리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천천히 웃었다. 그렇구나. 트리스는 뒷목이 서늘해졌다. 선과 악이 없다. 몇 안 되는, 스스로 전쟁을 선택한 자. 인간이 살던 도시를 연기로 물들이고 깃발을 꽂는 약탈자와는 본질이 다른 자. 그저 싸우고 싶어서 싸우며 인간의 죽음은 그녀에게 가치가 없을 것. 트리스는 알렉스가 인사를 하고 막사를 나갈 때까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죽일 수 있을 때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다가, 눈을 꽉 감았다.  

 

 엔지니어가 합류하기 전 이틀 동안 트리스는 알렉스의 부대와 함께 남진을 위한 물자 교차로를 뚫었다. 유탄을 망치로 튕겨나고 방패로 막는 중앙군에게 대응할 수 없었던 남방군은 3키로 지점 뒤로 물러났다. 유탄발사기도 안 먹힌다니 저들이 인간인가?! 그렇게 절규하던 자는 방탄헬멧 채로 머리가 으깨져 대답을 듣지 못했다. 적어도 이 넓은 전장에서 두 존재만은 인간이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트리스는 알렉스가 망치를 휘두르고 발길질을 하며 핏빛 강을 만드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정말로 즐거운 듯 눈을 빛내다 도망치는 자의 뒷덜미를 붙잡고 내려찍으며 문득 웃음을 터트렸다. 금색 머리끝과 손이 피투성이가 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그들의 고통이 나의 즐거움이며 나는 이기기 위해 산다는 듯. 그러다 피로 흠뻑 젖은 검은색 안대를 올려 눈 아래를 비볐는데, 트리스는 그 눈동자가 깜빡이며 사물을 응시하는 것을 보았다. 속눈썹에 맺힌 핏방울을 아무렇게나 닦아내며 시야를 되찾는 것 까지 전부. 두 팔에 소름이 돋았다. 어떠한 의도도 악의도 없다면 너는 무슨 뜻인가. 이 아름다울 만큼 압도적인 폭력이. 대체 무슨 뜻이냐고. 

 알렉스는 전장의 비명이 환호성처럼 들렸다. 자신이 뛰어오르면 투견을 연호하면서 사기를 되찾는 아군이, 그들이 모두 자신의 등을 바라보며 제 무대를 깔아주는 것이 즐거웠다. 언제나 그녀는 가장 많이 죽였고 가장 훌륭한 싸움꾼이었으며 모든 자를 이기기 위해 살고 있었다. 그녀는 문득 트리스가 멀리서 은빛 방패로 적의 머리를 내려치고 그대로 팔을 휘둘러 시체를 튕겨내는 것을 보았다. 호흡을 낭비하지 않으려 숨을 조절하며 이를 악물다 야성의 눈으로 포효하는 것을, 그 울부짖음을, 전장의 끝에서 끝까지 가로지르는 짐승의 소리를. 알렉스는 순간 심장 위를 꾹 누르며 입술을 달싹대었다. 처음부터 핏빛이었던 것처럼 번뜩거리는 두 눈이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 닮았어. 나와 닮았어. 알렉스는 알 수 없는 두근거림에 한참을 서 있다가 적군이 모두 도망치고 나서야 숨 쉴 수 있었다. 

 

 …왜 그래? 

 나 너랑 싸워보고 싶어. 

 지령을 완수하고 돌아온 막사에 알렉스가 들이닥쳐 말했다. 씻고 옷을 갈아입은 트리스는 천으로 물기를 닦아내다 찌푸렸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린 건지 피가 머리카락에 거미줄처럼 엉겨 붙어 있었다.  

 너…씻기부터 하지 그래. 

 씻으면 흥분이 날아갈 것 같단 말이야. 한 번만 싸워주면 안 돼? 

 내가 뭐 하러.

 그러지 말고 한 번만.

 아까 그렇게 죽인 걸로는 성에 안 차나봐? 하긴 도망치는 놈들을 처음 놓쳤으니까. 

 너 보느라 정신이 없었어. 트리스 너 정말 강하더라. 나. 나보다 강할 지도 모르는 사람은 처음이야. 내가 널 이길 수 있을까? 넌 어떻게 생각해? 

 알렉스가 활짝 웃으며 두 팔을 벌렸다. 피투성이 모습으로 싸움을 조르는 꼴이 투견이라는 별명에 딱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바닥이 없는 듯한 호승심은 어디서 오는 걸까. 막사 안이 점점 피비린내로 차오르는 것 같았다. 트리스는 머리를 다 말린 수건을 아무렇게나 던져 놓고 의자에 앉아 턱을 괴었다. 싫어.

 피곤하지도 않으면서!

 그보다 너 이쪽 눈…멀쩡하지?

 응? 맞아. 왜?

 안대는 왜 끼는 건데?

 그 편이 더 재밌잖아. 알렉스가 한쪽 안대를 들어올리며 대답했다. 트리스는 입을 다물었다. 그럴 것 같았지만 직접 들으니 더 할 말이 없었다. 미쳤거나 미친 듯이 강하거나. 첫인상보다 백배는 더 위험한 녀석일지도 몰랐다. 마주본 두 눈이 깜빡거리다 웃었다. 이제 싸워줄 거야?

 트리스가 까끌거리는 목으로 침을 삼키며 입을 열기 직전 밖에서 분주한 소리가 들렸다. 중앙군의 합동 경례 소리와 됐다며 웃어넘기는 목소리. 알렉스가 표정을 활짝 펴며 막사 밖으로 뛰어나가자 트리스가 표정을 구긴 그대로 윗옷을 걸치고 그녀를 뒤따라갔다. 얼핏 보기에도 자그만 체구의 짙은 갈색 머리 여자가 안경을 끼고 헬멧을 쓴 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에린 대령, 방금 막 대 남방군 2작전부에 합류했다. 

 피라곤 튀어본 적도 없을 것 같은 흰색 장교 제복을 걸친 채였다. 

 

 ……에린 대령님께서는, 

 에린이라고 불러. 

 에린은…엔지니어? 군인?

 트리스, 뭘 묻는 거야? 에린은─ 

 에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던 알렉스를 제지하고 웃었다. 조용하고 투명한 웃음이었다. 괜찮아. 진정해, 알렉스. 트리스는 그녀가 아주 조금 불편했다. 이 미친 땅에서 이렇게 편안한 듯 웃는 사람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인간은 일찍 죽거나 아주 오래 산다. 광기에 몸을 맡긴 채 전쟁터를 어디보다도 편한 침대로 느끼는 인간들. 트리스는 그녀가 어느 쪽인지 확신이 필요했다. 늙은 여우의 속을 파헤치지 못하더라도 저 안경은 벗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징병된 엔지니어인지 군인인건지 궁금한 거구나. 

 실례였다면 사과할게. 

 당연히 후자겠거니 생각했는데 막상 보니까 모르겠어서. 

 …실례였다면……. 

 아니. 그런 소리 많이 들으니까 괜찮아. 난 병기공학자문을 거쳐서 정보지원활동대 대장으로 복무했고, 지금은 제1 제병협동대대 대장을 하고 있지. 웃음이 떠나지 않는 입이 조곤조곤 대답했다. 트리스는 그녀의 말을 듣다가 천천히 입을 벌렸다. 트리스가 아무리 남에게 관심 없다 해도 바람에 실려 오는 소문은 무시할 수 없었다.

 지금의 기계화보병 틀을 세운 사람. 맞아? 

 응. 

 내가 정말 큰 실례를 했어. 

 그러게 내가 뭐랬어. 에린은 강하다니까.

 투덜거리는 알렉스를 보며 에린이 웃었다. 그리고 금빛 머리칼에 엉긴 피를 떼어내주며 다독였다. 트리스는 그 손가락이 아주 하얗지만 단단하고 상처가 많은 것을 보았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고 있었으나 투견의 존재에 잠깐 감각이 마비된 것 같았다. 선한 인간은 이 땅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과 그녀가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안일한 판단이겠지. 트리스는 차분해지는 속을 숨기며 자신의 관등성명을 밝히고 에린과 악수를 나누었다. 

 그런데, 남은 한 명은? 

 아, 메그는……. 

 

 전쟁을 수단으로 삼는 자들에 의해 인간은 수단이 되었다. 우리는 목숨이 아니라 통계로. 군인이 아니라 자원으로 취급된다. 기념비에 새겨질 건국영웅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없다. 우리는 아무 이유 없이 개처럼 죽을 것이다. 

 

 나를 키운 인간은 전쟁고아를 모아놓은 고아원에서 자신의 후계를 고르던 늙은 퇴역군인이었다. 그녀는 무수한 대인살상기술을 넘겨 줄 아이를 찾고 있다고 했다. 나는 나이세는 것을 포기했을 때 그녀의 손을 잡고 고아원에서 나왔고 그녀의 이름보다 살인과 시체 은닉을 먼저 배웠다. 왜 나야? 하고 묻자 눈이 죽어있었거든. 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때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알 것 같았다. 죽은 눈으로 스코프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자들만이 저격수가 될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은 와해된 특수부대의 대장이라고 했다. 평생 남을 죽였고 앞으로도 죽이고 살 것이라고. 전쟁은 사라져야 할 것이지만 권력자의 그림자는 언제나 필요하다 말했다. 어린애에게 그따위 말을 하던 그 여자도 제정신은 아니었으나 나에게는 그것이 세상이었다. 그리고 지금. 귀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채로 탄창을 갈고 죽은 동료를 끌어안고 적군의 머리가죽을 벗기고 분노에 찬 비명을 지르다 쓰러지는 인간들을 한쪽 눈으로 보고 있을 때는, 그래. 이미 죽은 자에게 당신이 옳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내가 딱 백 명 째를 죽였을 때 날 군인으로 만들고 싶은 거냐고 물었지만 그녀는 아니라 했다. 너 같은 녀석을 군의 규율에 묶어놓을 순 없지. 바보 천치들은 너에게 복종만을 요구할 거다. 너는 자유롭게 사냥하고 멋대로 살아남아라. 하지만 네가 천 년에 한 번 나올 저격수라 해도 우리가 살아남는 법은 먼저 죽이는 것뿐이야. 그러니 언제나 적을 관찰하고 파악하고 함정을 파서 기다려라. 기다리는 시간만큼 네 수명이 늘어날 테니까. 

 낭비한 시간은 누가 보상해 주는데? 

 죽은 자들. 

 모래바람. 방아쇠에 걸리는 무게. 멀리서 스러지는 목표물들. 나는 그 여자에게서 돈 계산 하는 법조차 배우지 못했지만 그 외의 것은 모두 배웠다. 목숨을 빼앗기 전 마지막으로 그들의 표정을 살피니 네가 조물주이고 신인 것 같지. 하지만 그 기분에 빠져있으면 안 된다. 오만함은 정신을 더럽히니까. 너는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만 살아남아라. 그리고 고통스럽게 일찍 죽어라. 나는 그녀가 죽기 전에 한 말을 손톱으로 피부에 새기고 남의 죽음을 먹으며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성냥불처럼 사위어가는 목숨과 체온처럼 따뜻한 탄피가 내게 필요한 것이었다.  

 

 메그는 꼬박 72시간을 깨어 있다가 참모의장의 호출에 불려갔다. 막 고가치표적 사살 임무를 마치고 왔을 때였다. 메그는 검은 비니를 눌러 쓰고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경례를 받으며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진흙 한 점 묻어있지 않은 군화를 신은 채 다리를 꼬고 있는 참모의장이 그녀에게 인사했다. 

 수고 많았네. 

 알고 있으면 재워줘…….

 너의 다음 소속이 정해졌다. 

 망할. 

 그녀의 거친 말에 참모의장은 웃기만 했다. 어떤 명령을 내려도 수행해내는 능력을 휘두를 수 있다면 신경질 정도야 우스운 듯했다. 대 남방군 2작전부 거점으로 가게. 자네와 같은 자들이 세 명 있지. 그 중 한 명을 감시해줘야겠어.

 누군데? 

 가장 신참인 녀석. 

 아. 얼마 전에 성공했다던. 

 메그는 물고 있던 사탕 막대를 까딱거리며 턱을 괴었다. 그녀는 상관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관심이 없었다. 명령의 중요성과 수행 가능성이 가장 중요했을 뿐. 그러나 가장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의 효율을 내려 하는 그녀는 중요한 표적이 아닌 자에겐 관심이 없었다. 메그가 지루한 듯 눈을 부비며 말했다.

 그걸 꼭 내가 해야 해? 다른 놈들 많잖아. 댁 부관이나…뭐나.

 아니. 누가 한단 말이냐. 참모의장이 콧수염을 매만지며 웃었다. 그리고 부관에게 임명장을 건네받아 깃펜으로 날카로운 글씨를 써내렸다. 자네는 이제 참모의장 직속 1티어 저격특무부대 중대장이다. 협조하는 척 하면서 네 번째 괴물을 감시하도록 해. 지금쯤 내 꿍꿍이가 뭔지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고민하고 있겠지. 하지만 다 내 손바닥 안일뿐이야. 메그는 비니 아래에서 눈썹을 꿈틀대며 참모의장이 건넨 임명장을 바라보았다. 

 같은 처지한테 말이 심한데. 

 자네한테는 그런 건 별로 상관없잖아? 설마 동료의식이라도 드나?

 그건 또…웃기는 소리지.

 그래. 자네가 해야 하는 건 평소와 똑같다. 멀리 가면 쏴버려. 그 귀한 녀석이 남방군에 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누구보다 단단한 방패병을 쏘고 또 쏴라.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늙은 남자의 눈이 메그를 바라보았다. 메그는 의자에 푹 기대어 앉아 있다가 찌뿌둥한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표적이 아닌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으나 이유가 주어지면 누구보다 철저한 자. 이 군인 같지 않은 군인은 충성스럽지는 않았지만 우수하고 날카로웠다. 늙은 남자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메그는 받아든 임명장을 두 번 접어 코트 안에 넣었다. 그리고 경례 없이 뒤돌아 서 종이에 적힌 곳으로 향했다. 그 녀석을 근본부터 흔들어 놔라. 상성이 안 맞을 테니까. 귓가에 참모의장의 마지막 말이 맴돌았지만 곧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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