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쓰레기장에 사는 카르텔 개새끼들도 저마다의 종교는 있었다. 어제 살인을 저질렀더라도 오늘은 성당에 나갔고 피 묻은 손으로 묵주기도를 했다. 누군가는 산타 무에르테를 숭배하며 그녀가 죽음과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고 말했다. 종교를 납치와 밀수와 살인의 면죄부로 삼으며 훗날 풍요로운 내세로 갈 것이라 믿으면서. 거룩한 죽음의 우리 어머니, 오늘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그 인간은 경찰차를 피해 바이크를 몰다 트럭에 치여 죽었다. 동료의 시신을 수습하며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그가 말했던 내세는 생전의 사람들을 다시 만나는 곳일까. 그는 어렸을 때 죽은 부모를 만나고 싶다고 했었다. 만나서 반드시 복수를 하리라고. 하지만 나는 죽은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이기를 바랬다. 그리고..

백 명의 병사들 중 열 명은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자들입니다. 여든 명은 적의 목표물일 뿐입니다. 진정으로 싸우는 자는 아홉 명으로 이들이 전투에 걸맞은 사람입니다. 아, 나머지 한 명은 전사고, 그가 다른 이들을 전장으로 이끕니다. 그것이 그녀였다. 임무 중 실종된 대원을 찾으라는 명령을 받은 적이 있었다. 선두 부대는 공중 강습을 진행했으나 그들을 태운 헬리콥터는 착륙하자마자 공격을 받아 산산조각이 났다. 대원들과 승무원들은 방어를 튼튼히 갖춘 대규모 적군에게 둘러싸인 채 안데스 산맥의 깊은 산등성이에 고립되었다. 제 1소대 증원 부대는 헬기로 이동하던 중 적군의 사격을 받아 산기슭에 내렸다. 포위된 아군 병력으로부터 약 1.7키로 떨어진 곳이었다. 그녀를 포함한 대원 10명은 45키로그램의 무게의..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 네 동기는 대체 뭐냐? 에린이 언젠가 들었던 말이다. 에린은 노트북을 두드리던 손을 멈추고 의자에 묶인 남자를 보았다. CIA와 협업하면서도 테러 집단에 무기를 공급하고 정보료를 받았던 자. 허벅지에서 새어나온 피가 의자 위에 고였다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에린은 남자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본 후 다시 노트북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너 같은 인간들을 잘 알지. 비밀을 파헤치는 걸 쾌감으로 삼는 인간. 높은 지능을 가지고서는 타인과 상황을 통제하고 퍼즐이 맞아떨어질 때 보람을 느끼는 인간들. 거만하고 자부심이 대단해서 허를 찔리면 굉장히 수치스러워들 하잖아. 하지만 네가 날 쐈을 때 네 눈에는 아무것도 없었어.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었..

가정집 한켠을 개조해 바깥으로 문을 달아놓은 허름한 숙소. 철문 옆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이 밝았다. 손톱이 갈라진 하얀 손이 부드럽게 금색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오아시스에서 모래를 씻어내듯이. 잠들어 꼭 감긴 짙은 속눈썹에는 눈물이 말라 있었다. 에린은 작은 흉터가 남아있는 검은 눈썹을 매만지며 누가 여기에 상처를 내었는지 생각하다가 곧 그만두었다. 너는 우리 거야. 나는 네 머리에서 이 땅의 기억을 씻어내는 거야. 베개 위로 흐트러진 머리칼을 쥐어 입을 맞추었다. 모든 의문이 풀렸다. 내 것 아닌 이름으로 불리며 살아왔던 평생의 의문이. 날 때부터 공허했고 누구에게도 애정을 갖지 못한 삶이었다. 감동적인 영화를 볼 때엔 나에게도 저런 존재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막연히 생각했고, 가까이 지내던 자가 ..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똑같았다. 사하라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에서 4키로 떨어진 풍화성 암석지대. 초목이 자라지 않는 거친 산과 메마른 광야가 펼쳐져 있었다. 모래바람에 천 년을 혹사당한 돌기둥이 듬성듬성 고개를 내민 채였다. 새파란 하늘 아래로 구름이 낮고 길게 흘렀다. 땅에 닿을 것처럼 천천히. 그녀는 목덜미에서 피를 닦아내며 하늘을 보았다. 탈색을 반복해 거칠어진 머리끝에 핏방울이 종유석처럼 걸렸다가 툭 떨어졌다. 4륜구동 트럭과 커다란 전지형 타이어를 끼운 SUV 두 대가 서 있었다. 차체에 자동화기가 낸 구멍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뚫려 있었다. 유리창은 깨져 있었고 타이어는 반쯤 무너진 채였다. 뜨거운 돌바닥에 누워 있는 인간들은 죽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