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gene_FMF 2018. 11. 28. 01:00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똑같았다. 사하라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에서 4키로 떨어진 풍화성 암석지대. 초목이 자라지 않는 거친 산과 메마른 광야가 펼쳐져 있었다. 모래바람에 천 년을 혹사당한 돌기둥이 듬성듬성 고개를 내민 채였다. 새파란 하늘 아래로 구름이 낮고 길게 흘렀다. 땅에 닿을 것처럼 천천히. 그녀는 목덜미에서 피를 닦아내며 하늘을 보았다. 탈색을 반복해 거칠어진 머리끝에 핏방울이 종유석처럼 걸렸다가 툭 떨어졌다. 

 4륜구동 트럭과 커다란 전지형 타이어를 끼운 SUV 두 대가 서 있었다. 차체에 자동화기가 낸 구멍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뚫려 있었다. 유리창은 깨져 있었고 타이어는 반쯤 무너진 채였다. 뜨거운 돌바닥에 누워 있는 인간들은 죽은 듯했다. 운전석의 남자는 머리를 관통당해 즉사했고, SUV 뒤편으로 시체 네 구와 산탄총이 굴러다녔다. 그녀는 피웅덩이를 밟고 시체를 넘어 트럭의 깨진 창문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잠금을 풀었다. 그리고 핸들을 꽉 쥔 채 덜덜 떨고 있는 남자의 멱살을 쥐고 바닥으로 끌고 내려왔다. 남자는 비명을 지르지도 못 했다. 

 그녀는 남자를 열 걸음 떨어진 돌기둥에 묶었다. 피와 배설물 냄새가 지독했지만 표정을 구기지는 않았다. 그 후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체에서 끝없이 새어나오는 피가 검은 오아시스처럼 탁했다. 남쪽 멀리의 초목 없는 산들. 적색평원에 부는 바람. 그리고 적막함. 두려움에 헉헉거리는 숨소리만이 있었다. 그녀는 찌그러진 SUV의 보닛 위에 걸터앉아 턱을 괴고 먼 곳을 바라보았다. 뜨거운 바람이 불어왔다.  

 생각해보면 매년 이때 쯤 가축을 도축했던 것 같다. 아주 먼 옛날에 푸른 땅에서. 사람들은 돼지를 길렀고 날씨가 쌀쌀해지는 가을이 오면 도축을 해 고기를 저장했다. 마을의 노인들이 주도하는 도축은 신속하고 질서정연했다. 돼지의 잘린 목을 가지고 농담을 지껄이는 자 또한 없었다. 피가 흐르는 광경에 아이들이 울음을 터트리며 제 방으로 뛰어 들어갈 때 그녀는 자그만 손으로 철조망을 꼭 붙잡고 그 광경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그녀가 바라보는 대상이 죽은 돼지의 살점과 내장인지 묵묵히 칼날을 내려치는 인간들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군인일 수도 민간인일 수도 있다. 스스로 소총을 붙잡은 시민군일 수도 미국이 은밀하게 섭외한 현지의 대리군일 수도 있다. 폭격이 떨어져 무너지는 시가지에서 아이들을 대피시키고 군인들의 목을 베었다. 안티레바논 산맥을 기어올라 불법 무장단체의 목숨을 거둔 후에는 리비아에서 가장 큰 범죄조직의 행동반 노릇을 했다. 선과 악의 구분 없이 평생토록 전쟁에 몸 담그고 살아온 자. 그녀에게는 폭력이 수단일 때도, 즐거움일 때도 있었다.  

 인간은 압도적인 폭력을 두려워하나 한편으로는 그 밑에 무릎 꿇기를 바란다. 지배자의 잔인함이 자신들을 지켜 줄 것이라고 믿으면서. 그녀는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많은 이들이 그녀의 손에 피를 묻히길 원했다. 하지만 비무장 상태의 포로에게 잔학 행위를 요구하던 자들은 모두 죽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단지 그게 그녀였다. 그녀를 스쳐지나간 자들은 그녀를 정의내릴 단어를 평생토록 찾겠으나 그러지 못 할 것이다. 즐거울 때에는 이를 드러내어 웃고 즐겁지 않을 때에는 눈동자를 차갑게 멈추는 그녀를. 그 누구도 확신하지 못 하고 그 누구도 갖지 못 했다. 

 돌기둥에 묶인 자가 옆구리에서 피를 흘리며 신음했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남자를 보았다. 과다출혈로 죽기에는 환부가 작았으므로 사막 한 가운데에서 모래바람에 깎여나가는 암석처럼 천천히 죽어가는 것이 그의 운명 같아 보였다. 그가 입을 뻐끔거리며 무어라 말했다. 그녀는 여전히 턱을 괸 채로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보닛에서 일어났다. 괜찮아. 지금은 가을이니까. 바로 죽지는 않아. 그녀가 말했다. 나도 자세한 건 잘 모르는데, 너를 고통과 두려움 속에 묶어두라고 했거든. 그래서 이런 걸 생각해봤어. 혹시 물 필요해?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자신의 끝을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이 땅과 어울리지 않는 금색 머리칼이 바람에 흐트러질 때마다 눈을 감았다 떴다. 늙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가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미끄러졌다. 담배를 피우고 싶소. 남자가 말했다. 여전히 높게 떠 있는 저 해가 저물기 전에는 죽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으면서.   

 그녀는 피로 젖은 남자의 주머니 안에서 담배 한 갑과 라이터를 꺼냈다. 그리고 입에 물어 담뱃불을 붙인 후 그에게 넘겨주었다. 남자는 아주 간신히 담배 연기를 빨아들였다. 재가 옷 위로 떨어졌지만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돌기둥 아래에 고여 있는 핏자국으로 꽁초가 떨어졌다. 그녀는 그에게서 시선을 돌려 넓은 땅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가, 구름이 옅은 황금빛과 보라색으로 물드는 것을 보며 작은 서류가방을 챙겨 돌아갔다. 

 

 온 세상이 사막의 모래로 뒤덮여 있었지만 그 평원 끝에 시선이 닿을 때마다 신기루를 생각했다. 많은 사람을 죽였으나 어떠한 사건도 없던 삶의 밑바닥. 무의식의 기저에서 끝없이 맴도는 어떤 형체를. 한 번도 발 딛은 적 없는 겨울나무 숲에 대한 꿈을 꾸었고, 천 개의 이파리가 손을 흔드는 녹지를 희망했다. 적막하고 황량한 사막을 걷는 꿈을 꿀 때는 어김없이 그들을 보았다. 두 명인가? 세 명? 뒷모습인지 앞모습인지도 구분할 수 없는 형체였다. 그들이 모래사막의 끝자락에 서서 말을 걸 때도 있었으나 대답하는 방법이 기억나지 않았다. 이상하다. 이렇게 긴 시간이 지났는데. 죽은 지 참 오래인 것 같은데. 하늘은 무심하게도 푸르렀고 태양은 비정하게도 높았다. 입을 열면 눈물이 샐 것 같은 꿈이었다. 

 그들이 손을 내밀었으나 맞잡지 못 했다. 무엇으로도 이어지지 않을 허상의 온기가 맥없이 떨어지자 칼에 찔린 것처럼 어지러워졌다. 기다려.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신기루에 한평생 타인을 사랑한 적 없는 영혼이 아프게 외치기 시작했다. 우리 이름을 나누었던 것 같아. 나는 너희를 사랑했던 것 같아. 걸음마다 모래에 침식당하고 햇빛이 팔을 잡아당겼으나 앞으로, 앞으로, 이름을 알려줘, 내 이름을 알려줘, 뼈가 보일 만큼 절박한 목소리였다. 이 피는 내 것이 아닌 것 같아.  

 검은 손이 그 무엇이라도 붙잡으려 모래 위를 긁었으나 아무것도 붙잡지 못한 채 죽은 모래의 땅으로 가라앉았다.  

 

 그녀는 잠에서 깨어나 눈물을 조용히 닦았다. 어떤 고용주도 그녀를 상냥하게 깨운 적 없었지만 그녀는 아침마다 키스를 받으며 눈뜨길 원했다. 그리운 입술의 감촉이 희미하고 투명하게 공중을 맴돌다 사라졌다. 그녀는 소파에서 일어나 작은 벽시계를 본 후 커튼 사이로 눈만 내밀어 밖을 확인했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고 검은 서류가방을 커다란 백팩에 넣어 좁은 집을 나섰다.  

 더운 바람이 부는 낮이었다. 거리에는 검은 후드를 쓴 사람도 어깨에서 이어지는 흰 천을 머리까지 두른 사람도 있었다. 아이들은 품 넓은 청바지와 서양의 캐릭터가 그려진 흰 티셔츠를 입기도 했다. 누구는 낙타를 타고 다녔고, 누구는 스쿠터를 느리게 몰며 사람들 사이를 지나갔다. 그녀는 유럽에서 수입해 온 티셔츠 따위를 파는 허름한 옷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내부에는 높게 걸린 옷가지들을 뒤적거리는 사람이 두어 명 있었다.  

 그녀는 카운터 안쪽의 낡은 문을 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내부 창고 같았다. 돌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가자 흐린 불빛 속에서 사람들 몇 명이 카드를 돌리며 브리스콜라를 하고 있었다. 담배 연기를 뱉으며 술을 마시는 자들도 있었다. 그녀는 구석에서 졸고 있는 남자의 어깨를 툭 치고 백팩에서 서류가방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남자가 인상을 쓰며 고개를 들었다가 눈을 바닥으로 내리깔았다. 그리고 품에서 몇 겹으로 감싼 종이뭉치를 꺼내 그녀에게 쥐어 주었다. 다음 일은 뭐야? 그 안에 같이 있어요. 오늘까지요. 그녀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종이뭉치를 열어 내용을 확인한 후 가게를 나갔다.  

 그녀는 점심시간이 지나간 한적한 가게에서 구운 양고기와 샤르바를 먹었다. 감자와 삶은 마카로니 한 접시도 함께 주문했다. 그녀는 차와 함께 나온 땅콩을 씹으며 창문으로 거리를 내다보았다. 좋은 날씨와 의미 없는 사람들. 차가 씁쓸했고 아이들이 많았다. 그녀는 해가 질 때 쯤 일어나 음식 값의 세 배를 자리에 올려두고 나왔다. 

 눈에 띄는 머리카락을 후드 안으로 숨기고 걸었다. 해가 진 거리에서 사람들이 분주히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허리가 구부정한 누군가의 뒤를 조용히 따라갔다. 가판대를 접는 가게에서 미지근한 물 한 병과 저녁으로 먹을 감자 몇 알을 사기도 했다. 누군가는 빗자루로 바닥을 쓸었고 누군가는 빨래를 걷고 돌아갔다. 낮은 건물들의 하얀 외벽이 어둠에 물들어가는 시간이 좋았다. 비닐봉투가 바스락거리는 그 소리가 골목마다 따라올 때 쯤 앞에서 걷던 남자가 뒤를 돌아보았다가,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뛰지 않았다.

 탁, 탁, 낡은 신발이 돌바닥을 절박하게 디디며 달려나갔다. 그녀는 남자가 인적이 드문 곳으로 도망치는 것을 보며 기억 속의 콧노래를 불렀다. 왼쪽. 오른쪽. 직선으로. 거리에는 전구 하나 없었고 귀퉁이가 무너져가는 낡은 집들 사이로 발소리가 퍼졌다. 그녀는 두 손을 깍지 껴 어깨 근육을 당긴 후 손을 풀었다. 그녀에게는 도구가 필요 없었고 증거로 제출될 흉기도 없었다. 필요한 것은 백 번의 발걸음과 약간의 악력 뿐. 살인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자는 흥분하지도 걱정하지도 않는다. 각국의 군대가 수십조를 들여 살인의 거부감을 극복하기 위해 세운 심리 매커니즘도 필요하지 않을 것. 그녀의 걸음은 산책하듯 가벼웠고 머릿속에는 저녁 메뉴만이 떠돌았다.  

 모퉁이를 돌자 멀리 사람인지 입간판인지 모를 형체가 보였다. 그녀는 길을 따라가며 그것을 지나쳤다가, 지나치려 했다가, 돌아왔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기억을 쫓는 자가 진리에 이끌리듯 그렇게 했다. 겨울에는 눈이 내리고 가을에는 낙엽이 지듯이. 그렇게 했다. 그 형체는 어두운 골목 속에 서 있었다.   

 그녀는 흰 천으로 입과 머리를 가린 그 형체가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그저 차분하고 검은 눈이 자신을 응시하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날것으로 두려움에 삼켜진 것처럼. 황망한 그리움에 잠겨 죽을 것처럼. 두려움이라는 걸 알고 있기는 했었나? 대체 평생 동안 누굴 그리워 한 거야? 그녀가 겨우 숨을 들이쉬자 뼈에 살이 붙는 느낌이 들었다. 눈시울에서 태어난 쓰라린 아픔이 핏줄을 타고 온 몸으로 퍼졌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평생토록 원인을 찾지 못한 그 고통, 피부를 베고 영혼을 깎아먹는 그 외로움, 가느다란 손가락이 흰 천을 벗어내었다. 그녀는 마침내, 

 알렉스. 

 제 이름을 찾았다. 

 

 CIA는 10년 전 보다 훨씬 과격한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타국 정부의 비밀을 훔치는 데 전념하는 전통적인 간첩기관이 아닌 인간 추적에 사로잡힌 살인 기계 조직이었다. 중동에서 뻗어 나온 테러리즘이 파키스탄 산맥에서부터 예멘과 북아프리카의 사막으로, 소말리아의 부족 간 전쟁에서부터 필리핀의 빽빽한 정글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전 세계에 걸쳐 수행된 그림자 전쟁에서 미국은 살인 로봇과 특수전부대를 이용하여 적을 추적해왔고, 비밀 첩보망을 구축하기 위해 사략선들에게 돈을 지불하고 오합지졸인 대리군에 의존했다. 변덕스러운 독재자들과 믿을 수 없는 외국 정보기관들에 총구를 들이대기도 했다. 이 모든 행동의 목적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자들을 억제하는 것이었으나, 사실은 미국을 위협하는 정부의 탄생을 막기 위해 타국의 쿠데타를 각본부터 실행까지 완벽히 주도했다는 것을 모르는 자는 없었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그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조직처럼 묘사되지만 실제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예루살렘에서 모사드의 눈을 피해 정보를 모으고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을 붙잡아 관타나모 수용소로 밀어 넣으면서도 수십 수백은 더 죽었을 것이다. 죽은 자들은 본부 중앙에 위치한 명예의 벽에 익명의 검은 별로 새겨졌다. 검은 눈을 가진 그녀는 순직한 동료들의 별 아래에 죽은 날조차 적혀있지 않은 것을 보고도, 계속 그 조직에 머물렀다.

 그녀는 몇 년 동안 중동과 러시아에서 준군사조직을 지원하는 부서에 있었다. 현지의 작전관으로 일하며 몇 민간청부인에게서 섭외를 받기도 했다. 그녀는 매번 거절했는데, 그녀가 손에 피를 묻히는 이유는 임금 따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저 최대한 많은 정보를 알고 싶어 했으며, 알아야 했고 기억해야만 했다. 별이 그녀를 부르듯 언젠가 이 모든 것들이 도움이 될 거라 믿으면서. 그 막연한 믿음의 근거는 없었다.

 중동에서 몇 년을 보낸 후에는 대 아랍권 테러리스트 센터에 파견되었다. CTC 작전 중심부에 급조된 칸막이들의 미로가 그녀의 새로운 일터였다. 미로 귀퉁이마다 마분지로 만든 급조 표지판들이 붙어 있었고 표지판들은 고가치표적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반드시 제거해야 할 위험인물과 당장은 죽이지 않아도 될 자들, 포섭해야 할 인간들을 분류했다. 한 명을 뒤쫓기 위해 수백 페이지의 정보를 분류하고 걸러내면서. 그렇게 일한지 두 달 쯤 되었을까. 그녀는 무거운 눈꺼풀을 카페인으로 이겨내며 여섯 대의 모니터를 응시하다가 누군가의 사진을 보았다. 파키스탄에서 원자폭탄을 빼돌린 인간을 추적하기 위해 리비아로 파견된 동료를 죽인 누군가의 사진을. 

 에린은 자신이 가겠다고 했다.  

 

 너를 만나면 왜 그랬는지 들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다 집어치울래. 에린이 아즈다비야를 가로지르는 도로 위에서 한 손으로 차를 몰며 가발을 벗었다. 알렉스는 말없이 그녀의 얼굴만을 보았다. 에린은 룸미러를 힐끔거리다 차를 아무것도 없는 길가에 멈추고 알렉스의 두 뺨을 끌어당겨 입을 맞추었다. 혀가 섞이고 숨이 얽혔다. 더듬더듬, 저 너머 고대의 편지에서 나의 이름을 찾고 너의 기억을 읽는 것처럼. 맞아. 너는 이런 향이 났고 이런 감촉을 가지고 있었지. 우리의 피가 마침내 만났다. 손끝에 닿는 모든 감각이 제 것이었다. 붉은 눈에서 문자로 기록할 수 없는 감정들이 뜨거운 눈물에 섞여 뚝뚝 떨어졌다. 에린. 알렉스가 숨을 제대로 내뱉지 못하면서도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 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 평생 외로웠는데 이유를 알 수가 없었어. 자꾸 아픈 꿈을 꾸고 원하지 않게 눈을 떴었어. 너를. 너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못 했어. 내가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혹시 나 때문에 위험해진 거야? 그래서는 안 되는데, 그래서는, 안 되는데. 크고 단단한 손끝이 작디작게 매달려 옷자락을 꽉 쥐었다. 이 짧은 삶 평생토록 느껴본 적 없는 기쁨과 두려움으로. 아니야, 알렉스. 에린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괜찮다고 말했다.  

 네가 몇 명을 어떤 이유로 죽였는지 상관없어. 매일 아침마다 같이 커피를 마시던 동료를 죽였대도. 평생을 쫓아 감옥에 처넣길 바라던 사람이래도 상관없었어. 고개를 들게 하는 에린의 눈꼬리에도 눈물이 걸려 있었다. 보통 사람이 이때까지의 일생을 부정할 수 있을까? 친지와 친구들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내 인생이 통째로 공허했다고? 영화 각본이 아니고서야 못 하겠지. 하지만 나는 했어. 네 사진을 본 순간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너라고. 내가 다시 태어난 목적은 이것이라고. 확신했어. 에린의 입술이 젖은 눈꺼풀 위에 닿았다. 알렉스가 하얀 피부를 더듬으며 에린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입을 맞추고, 또 울었다. 기억해내지 못했던 꿈이 실제가 될 때까지. 이 진저리나는 사막에서도 나무와 종이의 냄새가 났다. 이제 계속 함께인 거지? 나를 두고 사라지지 않을 거지? 두꺼운 팔이 가느다란 어깨를 꽉 안았다. 그래. 옛날처럼. 계속 함께할 거야. 에린이 그 품에 기대어 고개를 끄덕이며 속삭였다. 

 우리 사하라를 넘자. 우리의 반쪽을 찾으러.